용리단길 사로잡은 89년생 “F&B요? 이젠 F&C죠”
코로나 때 성장, 구인난도 안 겪어
모닝루틴 연대 커피문화사업 하고파
“F&B(Food and Beverage)는 이제 F&C(Food and Community)로 가야 합니다. 레스토랑의 팬덤을 만들고, 직원끼리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 그 연결됨(Connection)이 사람을 모이게 하는 이유가 돼 줄 겁니다.”
서울 용산구 용산역과 신용산역 사이의 ‘용산 은행나무길’. 이색적인 매장과 고즈넉한 풍경이 공존하는 이곳, 용리단길 조성에 일조한 인물로 손꼽히는 이가 있다. 바로 체육인 출신 외식업계 아웃라이어(기존의 틀을 깨는 사람)인 박재현(34) 로프컴퍼니 대표다. 용리단길에는 그가 만든 쌀국숫집 미미옥, 햄버거 가게 버거보이, 이탈리안 레스토랑 쇼니노가 있다. 6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 ‘캠핑맨’의 크리에이터이자, 오너셰프, 60명이 넘는 직원을 이끄는 청년 사업가인 박 대표를 헤럴드경제가 지난달 26일 만났다. 그는 구인난에 허덕이는 외식업계에서 새로운 조직 문화를 전파, 업계에 관심있는 MZ세대 사이에서 ‘일할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는 장본인이다.
그의 쌀국숫집 직원에겐 사원증이 나온다. 1년마다 연차는 5일씩 늘어나 3년차는 25일을 쉴 수 있다. 사내 메신저는 스타트업이 쓰는 업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슬랙(slack)’이다. 잘하는 직원에겐 ‘우수 팀원상’을 수여한다. “여러분이 매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멋있게 영상으로 담아내겠다”며 올해는 영상 프로덕션을 차렸다. 노동 강도가 높아 ‘신종 3D 업종’으로 인식되는 외식업계에서 박 대표는 사람을 지킬 키워드로 ‘커뮤니티’를 강조한다.
‘인간 박재현’의 뿌리는 체육인이다. 때문에 그는 힘을 합쳐 어려움을 이겨내는 연대(커뮤니티)의 힘을 안다고 했다. 좋아서 시작한 태권도로 ‘명문’ 한국체대까지 들어갔지만, 입학 첫해 백혈병 진단을 받고 3년을 투병했다.
박 대표는 “이 시간(투병 기간)은 젊음을 잃은 것 같은 공허함을 안겼다”고 털어놨다. 병마를 이기고 나니 이미 스물 세 살이었다. “가면 길이 보일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그는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을 공부하던 중 요리의 매력에 빠졌다. 그 후 뉴욕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의 고향에 들렀다 ‘살아보고 싶어’ 현지에 여행사를 차린다. 귀국 후에는 방앗잎이 들어가는 한국식 쌀국숫집 미미옥을 2019년 울산에 처음 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3개 브랜드, 6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용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용산에 매장을 열게 된 이유는.
▶미미옥은 고향 울산에서 18평짜리 가게로 처음 시작했다. 임대료 부담이 덜한 울산에서 실력과 자신감을 쌓으려 했다. 그러다 지인의 한정식 가게를 우연히 인수하면서 용산에 터를 잡았다.
-동네 부동산 사장들과도 친하고, 용산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평이 많다. 특별한 노력을 했나.
▶이 동네는 40~50년 이상 사신 원로, 터줏대감이 많은 곳이다. 우리가 들어오는 게 그분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다 생각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다. 매일 마당을 쓸고 동네 폐휴지를 모아 같이 버렸다. 근처 백반집은 주인이 35년 넘게 장사를 한 곳이다. 메뉴는 다르지만 우리 매장에 사람이 몰리면 손님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 않겠나. 시트지나 간판을 바꾸는 걸 도와드리고 쌀국수도 갖다드리면서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다. 미미옥의 존재가 동네(지역 공동체)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용산에서 양식·쌀국수·햄버거 브랜드를 운영한다. 카테고리가 다 다른데 이를 관통하는 것이 있나.
▶모두 삶에서 영감을 받은 브랜드다. 햄버거는 좋아하는 캠핑을 갈 때 가장 맛있게 먹는 메뉴이고, 쇼니노는 이탈리아에서 살던 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다(쇼니노는 박 대표의 영어 이름(Shawn)에서 나왔다). 미미옥은 귀국하면서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음식을 만들겠다는 결심에서 만든 식당이다. 이 쌀국수에 들어가는 방앗잎은 고향인 경상도에서 자주 쓰는 식재료다. 스스로 살아온 시간에서 나온 브랜드이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에 진정성이 들어가더라.
-뉴욕과 이탈리아에서 각각 4년 넘게 지내고 귀국한 지 4년이 넘어간다. 한국 F&B의 특징을 꼽는다면....
▶한국에선 ‘뭐 먹을래(메뉴 중심)’를, 미국·이탈리아에선 ‘어디 갈래(장소 중심)’를 사람들이 많이 묻는 편이다. 전자가 메뉴에 따라 장소가 정해진다면 후자는 중심이 그 레스토랑에 있는 것이다. 메뉴가 중심이 되면 검색에서 나오는 트렌디한 쌀국숫집에 갈 확률이 높지만 가게가 중심이 되면 그곳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에 시선이 좁혀진다. 가게에 대한 로열티, 일종의 헤리티지가 깊어서 트렌드와 무관하게 그 레스토랑을 찾는 팬덤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한국이 약한 것 같다.
-그게 당신이 말하는 F&C인가.
▶커뮤니티 기반의 F&B가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전을 대표하는 빵집 성심당이 빵값을 올리면 그 팬(충성 고객)은 ‘나라 경제가 많이 어렵구나’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이를 방증하는 사례라고 본다. 이웃과 공동체의 신뢰에 기반해 성장한 미국 샐러드기업 스위트그린이나 팬이 스스로 브랜드 홍보를 자처하는 캐나다 패션업체 룰루레몬이 한국에서도 가능하다고 본다.
-당신에게 F&C는 음식을 매개로 한 지역 공동체, 소비자와 커뮤니티는 물론 직원과 커뮤니티도 포괄하는 단어로 보인다. 실제 매장 직원의 근속 기간이 청년층(15~29세) 첫 직장 평균인 18.8개월(2022년 통계청 기준)에 비해서도 5개월가량 길다고 들었다. 로프컴퍼니는 기존 F&B 와 조직 관리가 어떻게 다를까.
▶우리 회사는 사람에 대한 탐구와 이해에 다른 곳보다 시간을 더 많이 들이는 것 같다. ‘왜 이 사람이 여기에 일하러 왔을까’에 집중한다. 사람마다 삶의 이유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모두 다르지 않나. 이 매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이유에 대해, 일하고 난 후엔 내 삶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같이 고민하고 보여준다. 최근 전 직원이 평일 하루 문을 닫고 아침에 시작, 낮에 끝내는 운동회를 했다. 대행사를 섭외해 제대로 했다. 왜 이 운동회를 하는지 확실히 알리고 같이 응원하며 그 모습을 프로덕션 팀이 영상으로 멋지게 담아서 보여줬다. 그럼 이 친구들에겐 ‘일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다. 직원과 커뮤니티 즉 직원 간의 관계 형성에 진정성을 갖고 임하면 ‘이곳은 나를 위해 이 정도까지 생각해 주는구나’하는 마음이 전달된다. 조직관리 스타트업 레몬베이스의 현정환 이사님이 HR 분야 제 멘토신데 이사님의 조언들을 바로 실행에 옮긴 게 도움이 많이 됐다. F&B업계에서 매장 2~3개만 운영해도 직원이 20~30명이다. 작지 않은 조직임에도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곳이 많다. 일에 무게감을 부여해 일을 일답게, 일터를 일터답게 만들었다. 정말 회사로 여긴다면, 체계가 있다면 당일 퇴사를 하겠나. 매장은 회사이고 공과 사가 구분되며, 직원의 사적인 부분을 존중한다는 노력을 보여주려 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우리 매장들은 코로나19 때 성장했고 퇴사자가 적어 구인난을 크게 겪지 않았다.
박 대표와 얘기해 보면 남다른 실행력을 가졌다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항암 대신 자연치유와 식습관으로 운명을 바꿔 낸 전력이 있다. 투병 기간은 미루지 않는 습관과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계기를 갖게 했다. 그는 매일 오전 5시15분에 일어나고 아침 운동을 한다. 10년 동안 지켜 온 이 고집스런 루틴은 어떻게 살아야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버티도록 만든, 자신과 같은 MZ세대 직원들이 마주한 그 고민에 귀 기울일 마음을 갖게 한 보이지 않은 노력일지도 모른다.
-파스타를 만드는 로봇처럼 구인난을 대비할 기술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쌀국수 기계가 있다면 쓸 생각이 있다. 주방엔 사람이 하긴 힘든 일이 분명 있다. 문제는 정작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주문 받는 일이나 서빙이 오히려 외식업계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때 건네는 한 마디 같은 감성적인 터치는 유효하다고 본다. 지금 버거보이는 키오스크가 있는데 햄버거를 팔고 그 이상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없앨 계획을 갖고 있다. 사람이 할 부분과 기계가 할 부분을 다르게 가져 가려 한다.
-출근 전 가벼운 티타임을 즐기는 서울모닝커피클럽(SMCC·인스타그램 팔로어 5500여 명)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운영하는 이유는.
▶SMCC는 모닝 루틴 동기부여 커뮤니티다. 출근하기 전 간단하게 커피 한 잔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가볍게 뇌를 깨우고 출근한다고 보면 된다. SMCC에서는 눈 인사, 가벼운 대화(스몰토크) 속에서 생기는 ‘은은한 연대’를 느낄 수 있다. 아침이 주는 에너지를 좋아한다. 귀국 후 한국에 아침 일찍 여는 카페를 찾는 게 제 취미였다. 일본·호주나 유럽을 가보면 강력한 아침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일종의 선진 문화라고 본다. 일본 도쿄의 카페들을 직접 다녀봤는데, 오전 6시에 여는 카페도 생각보다 많았다. 현재 한국의 커피 사업은 일종의 ‘각성(카페인) 사업’에 가깝다. 그것과 다른 ‘커피 문화 사업’을 하고 싶다. 일찍 열고 일찍 닫는, 아침을 활용하는 힘을 가진 문화가 한국에서도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5년 뒤 박 대표와 로프컴퍼니는 어떤 모습일까.
▶로프컴퍼니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9년간 함께한 멤버가 3명 있다. 이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가 많아지거나 매출을 늘리는 것보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지금 이 멤버와 계속 일하는 게 목표다. 내 옆에 누가 몇 년 동안 얼마나 있었는지가 날 알려준다고 본다. 투자를 받거나 돈을 버는 일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리=김희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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