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억 기부한 주윤발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아, 갈 때도 빈손으로 갈 것”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갈 때도 빈손으로 가도 됩니다. 흰 쌀밥 두 그릇이면 되죠.”
지난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영원한 따거(큰 형님)’ 주윤발(周潤發)은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96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흰 쌀밥 두 그릇이면 된다. 하루에 점심과 저녁 흰 쌀밥 두 그릇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2010년 “사후(死後)에 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8억5600만 홍콩달러(약 1400억원)였던 재산은 2018년 56억 홍콩달러(약 9600억원)로 불었다. 부동산에 밝은 아내 진회련(陳薈蓮)의 투자 덕으로 알려졌다.
신작 ‘원 모어 찬스’ 개봉을 앞두고 14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50년차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을 묻는 질문에 “이곳을 벗어나면 다 똑같은 사람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윤발은 최근 마라톤으로 건강 관리에 푹 빠져있다. 그는 “곧 홍콩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라며 “이번에 부산에 와서 이틀 내내 달리기를 했고, 내일 오전에도 10㎞를 뛸 것”이라고 했다.
영화 ‘영웅본색’, ‘와호장룡’ 등으로 1980~1990년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주윤발은 1973년 단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100편이 넘는 영화에 등장하며 아시아 최고의 영화배우로 등극했다. 홍콩 민주화 운동 땐 공개적으로 학생 시위대를 지지하며 시민들로부터 ‘진정한 영웅본색’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밀키스’ 광고로 외국 연예인 최초 CF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주윤발은 한국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는 “1980년대 두세 달 정도 제주도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에 촬영 스태프들은 양식을 먹겠다고 했는데 저는 갈비탕이 너무 좋아서 매일 갈비탕에 김치에 밥을 말아 먹었다. 한국 음식이 잘 맞아서인지 한국과 잘 맞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기자회견 이후 낙지를 먹으러 갈 것이며, 한국 추위가 힘들어 밤마다 남대문에서 번데기를 사 먹으며 이겨냈다는 일화도 전했다.
오는 11월 5년 만의 신작인 ‘원 모어 찬스’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았다. 아래는 기자회견 일문일답.
―9600억원이라는 기부금을 냈다.
“제가 기부한 게 아니라 제 아내가 기부했다. (웃으며) 저는 기부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힘들게 번 돈이다. 저는 지금 용돈을 받고 산다. 정확히 얼마를 기부했는지는 저도 잘 모른다. 그런데 어차피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갈 때도 빈손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흰 쌀밥 두 그릇이면 된다. 하루에 점심과 저녁 흰 쌀밥 두 그릇이면 충분하다. 그나마 돈을 쓰는 분야는 카메라 렌즈다. 그런데 비싸봤자다. 왜냐면 중고이기 때문이다.”
―데뷔 50주년에 부산을 찾게 됐다. 신작 개봉 소감은.
“부산은 굉장히 아름답다. 아침에 이틀 연속으로 달리러 나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반가워 해줘서 기분이 좋다. 음식도 잘 맞는다. 조금 이따가 낙지를 먹으러 갈 것이다. 신작은, 이런 장르(코미디) 연기를 안 한 지 꽤 오래 돼서 기대가 많이 된다. 한국 팬들이 많이 좋아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동백길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하늘이 예뻤다.”
―7월에 와병설이 돌았다.
“제가 죽었다는 뉴스가 떴다.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취미를 찾고 건강을 유지하는 건데 저는 11월 19일 홍콩에서 하프 마라톤을 뛸 예정이다. 내일 아침에도 부산에서 10㎞를 뛸 것이다.”
―영웅본색이 아직도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본인이 꼽는 대표작 3작품은 무엇인가.
“영웅본색은 그때 당시 제가 방송국을 떠나 만난 첫 작품이어서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드라마보다 짧다. 짧은 시간에 긴 이야기를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영화의 힘은 크다고 생각한다. 대표작은 ‘영웅본색’, ‘와호장룡’, ‘첩혈쌍웅’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큰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1980년에 한국에서 농부 일을 잠깐 했고 두세 달 정도 제주도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에 촬영 스태프들은 양식을 먹겠다고 했는데 저는 갈비탕이 너무 좋아서 매일 갈비탕에 김치에 밥을 말아 먹었다. 한국음식이 잘 맞아서인지 한국과 잘 맞는 느낌이 들었다. 단 한 가지 적응이 안 되는 건 한국의 추위다. 집에 한국의 옛 장롱들이 많다.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때 당시 남대문에 번데기를 파는 집이 있었는데 밤마다 번데기를 사러 갔다.”
―홍콩 영화 황금기에 이어 한국 영화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영화계 인사들이 헐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한 업계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할 때 다른 지역이 이를 이어서 더 먼 데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건 매우 좋은 일이다. 한국 영화계가 이렇게 부상할 수 있어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홍콩 영화계와 홍콩 드라마계는 어떤 의미인가.
“저는 1973년에 배우 훈련반에 들어갔다. 그 당시 수업과 방송국이 없었다면 사람들에게 나를 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방송국 덕분에 영화계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신작 ‘원 모어 찬스’ 관람 포인트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연기가 하고 싶은가.
“원 모어 찬스는 부자지간의 정을 다룬 영화다.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만 감동을 남겨두기 위해 하지 않겠다. 앞으로의 연기에는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기회가 온다면 어떤 역할이든 도전할 마음이 있다. 당분간 촬영 일정이 없을 땐 운동선수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겠다.”
―50년차 배우로서의 마음가짐과 주윤발이라는 인간으로서의 마음가짐이 궁금하다.
“사실 지금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저는 배우고 당신은 기자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저희는 다 똑같은 사람이다.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너는 수퍼스타다’, ‘너는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다.”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유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재가 매우 넓고 창작 자유도가 매우 높다. 가끔 보면 ‘이런 이야기까지 다룬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좋아한다.”
―국내에선 한국 영화 위기론이 일고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헐리우드까지 직면한 문제다. 홍콩 영화계도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다뤄야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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