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날뛰는데 '폭탄' 키우는 가계빚 '답 없는 당국' [머니뭐니]
금리도 상승 이어져
가계빚 안정적 관리 위해선
거시정책과 통화정책 엇박자 해결해야
[헤럴드경제=서정은·문혜현 기자] “가계부채를 방만하게 운용하고, 그런 것을 통해서 경기부양이나 내수진작을 하는 정책은 지양하겠다. 다만, 갑자기 금융권 대출을 너무 심하게 조이면 중산층 서민 대출 제한이 될 수 있어 이 부분을 유의하면서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갈 것” (추경호 경제부총리 5일 출입기자 간담회)
정부가 한발 늦게 가계부채 급증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풀린 고삐는 조여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 거래가 늘고 정부가 청년층 주거지원 확대를 위해 대출 만기를 늘리면서, 올 2분기 주택담보대출만 14조원 이상 확대됐다.
빚의 규모 자체도 부담이지만, 금리 오름세는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주요국 긴축이 쉽게 종료될 것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미국 국채 10년물이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는 등 시장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국제유가 마저 높은 변동성을 보이며 물가도 꿈틀댈 채비를 보이고 있어, 금리 인하 시점은 더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고금리 상황에 불어난 가계빚이 한국 경제를 짓누를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추 부총리의 말처럼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가 요구되는 때다. 문제는 거시 정책과 통화 정책의 조화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대출 규제를 느슨하게 하는 동안, 한국은행의 통화 긴축은 힘이 약해졌다. 특히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며 5연속 ‘긴축적 동결’을 이어가는 동안 이어진 엇박자가 독(毒)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주요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9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3294억원으로 집계됐다. 8월 말(680조8120억원) 이후 한 달 새 1조5174억원이 불어났다. 가계대출 잔액은 5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해 빠르게 불었는데 여기엔 주택담보대출이 한몫 했다. 5대 은행 주담대 증가폭은 7월 1조4868억원, 8월 2조1122억원, 9월 2조8591억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대출은 커지는데 금리마저 치솟고 있다. 전날 기준 5대 주요 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4.17~6.288%, 혼합(고정)금리는 4.00~6.23% 수준이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3%대였던 변동·고정 금리 하단이 이달 들어 4%대로 올라섰다.
금리는 더 오를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통화긴축 정책이 장기화될 것으로 본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에 은행채 금리가 오르면, 은행 주담대 고정금리도 뛴다. 여기에 은행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유치했던 100조원 규모의 고금리 예·적금 만기도 돌아오고 있다. 자금 재예치를 위한 은행 예·적금 금리 경쟁이 벌어지면서, 대출금리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지난해부터 부동산 시장 폭락을 우려해 금리인상을 자제시켰다. 은행의 이자장사를 막기 위해 금리 상승을 틀어쥐자 부동산은 빠르게 안정됐다. 하지만 50년 주담대 등 부동산 연착륙 방안이 나온 뒤 대출 수요가 늘면서 가계대출엔 다시 불이 붙었다.
금융감독원은 당국과 한은이 가계부채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하지만, 온도차도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의 경우 “가계부채에 대해 지속 관리가 필요하다”면서도 가계부채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원장은 “수치적으로 보면 50년 주담대 가이드라인이나 차주별 총부채상환비율(DSR) 합리화 등으로 여러 노력을 통해 (가계부채 관리를) 진행 중”이라며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한국은행과 차이가 없는데, 8월 대비 9월로만 놓고 보면 각종 노력으로 가계부채 증가폭이 1조원 이상 줄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또한 지난 4일 “신용대출 등을 포함한 전체 가계대출은 올 들어 월 평균 3조6000원 규모로 늘어 2020~2021년 월 평균 9조7000억원 증가 당시 비해 안정적으로 관리 중”이라며 “최근 주택거래 회복 등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상황을 면밀히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가계부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정책적 관리노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BIS기준)은 2021년 105.4%→2022년 104.5%→2023년 1분기 101.5%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 다만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108.1%로 5년 전보다 16.2% 올라 비교 가능한 26개국 중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한은은 당국과 가계부채 규모에 대한 시선이 사뭇 다르다. 최근엔 정책 수단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한은은 금융안정상황에서 “올해 하반기까지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할 여지가 있지만, 정책 대응을 하지 않으면 향후 3년간 가계부채가 매년 4~6% 정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이 실시한 DSR 규제를 계속 강화하면 주택 관련 대출 증가율이 조금은 낮아질 것이라 전망했지만, 한번 살아난 부동산 상승 기대감이 쉽게 꺾일 것으로 보진 않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가 부적절했다고 지적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금융권의 대출 금리 상승을 제약하면서, 오히려 대출 확대를 용인했다”고 꼬집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도 “단순히 50년 만기 주담대 접근을 막고 주택구매 수요를 억눌러서는 가계대출을 줄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책적 공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5일 열린 ‘한은·한국금융학회 공동 정책심포지엄’에서 “거시건전성 정책은 금융위에 의해 주도되고 한은 참여가 제한적”이라며 “최근 상황은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이 조화롭지 않은 경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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