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2만구 부검한 법의학자가 말하는 ‘죽음의 7단계’[북리뷰]

유승목 기자 2023. 10. 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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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라는 말을 들어봤을 테다.

"죽음은 과정이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저자는 죽음은 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험이라고 확신한다.

책은 셰익스피어가 희극 '뜻대로 하세요'에서 "인생은 7막입니다"라고 한 말을 빌려 아이부터 노인까지 일곱 단계에 걸친 죽음의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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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
리처드 셰퍼드 지음│김명주 옮김│김영사

한 번쯤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라는 말을 들어봤을 테다. 살아가면서 선택이 중요하다는 격언이지만, 달리 보면 삶은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고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인생의 여정에 따라 죽음이 다가오는 때와 방식,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30여 년에 걸쳐 2만 구 이상의 주검을 부검한 베테랑 법의학자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까. “죽음은 과정이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저자는 죽음은 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험이라고 확신한다.

죽음을 삶의 과정이자 완성으로 바라보는 이런 태도는 법의병리학자라는 저자의 직업에서 비롯됐다. 의사로서 메스를 죽음을 막는 대신 충실히 파헤치는 데 쓴 결과 저자는 평온했거나, 불행했거나 죽은 이의 얼굴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고 밝힌다. 다만 어린 아기부터 노인까지, 질병에서 사고사까지 저마다 안고 있는 이야기가 다를 뿐이다. 책을 통해 그간 공개한 적 없었던 스물네 건의 사망 케이스를 꺼낸 이유다. 슬프고 감동적인, 때론 섬뜩한 죽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를 공유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책은 셰익스피어가 희극 ‘뜻대로 하세요’에서 “인생은 7막입니다”라고 한 말을 빌려 아이부터 노인까지 일곱 단계에 걸친 죽음의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60대 노인인 알프레드 후프의 죽음엔 관절염으로 무릎이 망가진 노쇠한 나이에도 지적 장애아들을 불량배로부터 지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던 고귀함이 보이지만, 대체의학을 맹신한 부모의 신념으로 태어나고 6개월밖에 살지 못한 퍼거슨의 죽음에선 어긋난 사랑이 빚은 파국만 존재한다. 동일한 것은 죽음이란 결과다.

그렇다고 어떤 죽음이든 그저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삶의 인과성이 만들어내는 필연적 결과물인 죽음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의무가 있다는 게 책의 핵심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도 있지만, 대부분의 죽음은 가족과 함께하는 가운데 안정감 있게 이뤄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인, 자살, 사랑, 광기, 불운으로 죽은 사람들이 법의병리학자의 세계”라면서도 “나는 의자에서 책을 읽다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선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보다 충실하게 채워야 한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507쪽, 2만7800원.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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