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사회부터 IT시대까지… 여성은 늘 경제를 살렸다[북리뷰]
린다 스콧 지음│김경애 옮김│쌤앤파커스
원시시대 여성이 끼니 책임져
현대엔 세계 GDP 40% 생산
차별·제약 없는 시장 활동 땐
기아 1억5000만명 구제 가능
여성 노동, 기업 폭력성 줄여
통계 자료·사례 근거로 역설
경제학 전공 학생과 교수진이 가십을 나누는 웹사이트의 게시물 수백만 개를 분석한 결과, 여성 동료를 언급하며 자주 사용된 단어는 ‘섹시한’ ‘창녀’ ‘육감적인’, 남성 동료와 연관해 주로 사용된 단어는 ‘수학자’ ‘조언가’ ‘와튼스쿨’ 등이었다. 이런 경제학계가 그동안 경제 주체로서의 여성을 배제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
세계적인 경제 개발 전문가 린다 스콧은 지금까지 간과돼온 ‘여성 경제’를 ‘더블엑스 이코노미’라 명명하고 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주장한다. 지금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도 확실한, 또 유망한 전략이 바로 ‘더블엑스 이코노미’에 있다고 말이다.
책은 먼저 왜 그동안 ‘더블엑스 이코노미’가 ‘어둠’ 속에 있어야 했는지 배경과 역사를 살핀다. 그 과정에서 성차별적인 편견들을 하나하나 깨부순다. 먼저, 사냥꾼 남성 서사다. 남성은 사냥을 나가 고기를 잡아오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는, 거의 믿음으로 자리 잡은 이 같은 형태의 ‘성별 분업’은 사실이 아니다. 현대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남성의 사냥으로 고기를 잡아와 먹는 경우는 어쩌다 한 번일 뿐, 당대 사람들은 여성이 채집해온 채소와 집 근처에서 잡아오는 작은 동물을 주로 먹으며 끼니를 이었다.
두 번째 편견, 남성은 여성보다 더 힘들고 위험하고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 일부 성차별주의자들은 남성이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임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여성 역시 힘들고 위험하고 중요한 일을 했다. 직접 쟁기질을 하며 농사를 지었고 물고기를 잡았다. 하루 종일 앉아 비단도 만들었다. 현재 남아프리카에서 설탕 생산의 70%를 담당하는 게 여성이며, 여성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더블엑스 이코노미’는 오랜 세월에 걸쳐 무시되고 간과됐는데, 이는 남성 지배계층의 통제에 의한,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었다. 씨족 사회에서부터 여성은 거래의 대상이자 남편의 소유물이었다. 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고 집 밖으로 나설 수 없었다. 남성의 폭력으로 이러한 일을 강요당했다. 여성의 경제적 종속은 수 세기 동안 지속됐고 경제적 취약성은 여성이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놀랍게도 예전 프랑스 법령에는 아내가 남편의 요구를 거절하면 아내를 합법적으로 때릴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울컥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독자를 화나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남성은 이미 최대치를 내고 있다”며 미래는 ‘여성’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구체적 수치와 객관적 통계를 통해 ‘더블엑스 이코노미’의 숨겨진 힘을 내보인다. 여성이 제약이나 차별 없이 식량 생산에 참여한다면 만성 기아에 시달리는 전 세계 9억2500만 명 중 1억5000만 명을 구제할 수 있다는 식이다.
저자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남성의 고용 손실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과 남성의 제로섬게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가가 여성을 교육하는 데에는 엄청난 자원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여성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직원의 70% 이상이 남성으로 이뤄진 남성 우월적 분위기의 회사는 여성 직원을 상대로 한 성희롱과 성차별이 더 빈번하게 발생할 뿐만 아니라, 남성 직원들에게도 폭력적일 수 있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남성 중심의 분위기에서 직원을 향한 고용주의 강압과 통제가 더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여성이 전체 인원의 30%만 넘어도 기업은 효율적으로 관리된다. 성별 간 균형이 직장 문화를 좀 더 공평하고 친근한 분위기로 만들어 우수한 사업 성과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풍부한 근거 자료와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인구 절반이 아닌 전체다’ ‘우리는 팀이 돼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416쪽, 1만85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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