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의 수상한 움직임과 대만 사태 [세상읽기]
[세상읽기][북-러 밀착]
김종대ㅣ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지난 9월2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전략포럼에서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통합 지휘하는 ‘극동군사령부’를 창설하자고 했다. 8월에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삼국 정상회의가 새로운 합동 지휘체계를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을 성숙시켰다는 이야기다. 만일 극동군사령부 창설이 어렵다면 지금의 유엔군사령부를 합동 지휘기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은 유엔사 후방 기지 8곳을 자국 내에 운영하며 한반도에서 발언권을 확대하려는 일본의 노림수와 같은 맥락이다. 브룩스 전 사령관의 재임 중에 이미 유엔군사령부를 다국적군사령부로 변모시키는 일련의 변화가 시도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브룩스 사령관은 유엔사 회원국도 아닌 독일 장교를 초청하여 유엔사 참모부에 근무하도록 하는 뜻밖의 인사도 단행하였다. 유엔사를 단순한 군사령부가 아니라 유럽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연결되는 국제 안보기구로 만들겠다는 복안이 엿보인다.
브룩스 전 사령관의 배경에는 일본의 욱일승천기가 어른거린다. 더 의미 있는 변화도 있다. 지난해 9월 워싱턴 한미연구소가 주최한 화상 심포지엄에서 폴 러캐머라 현 주한미군사령관은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한 대비책을 묻는 말에 “아시다시피 사령관이나 지도자들은 그 어떤 것과 관련해서도 비상계획을 세운다”며 자신의 임무가 “한반도를 방어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안보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주한미군의 임무 범위가 한반도를 초월하여 대만 방어까지 확장되었다는 선언이다. 더 나아가 한미연합군사령부가 대만 위기 사태에서 후방지원 임무를 담당하는 사령부로 변모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의 임무가 동북아 전체로 확장되는 과정에 우리 정부가 어떤 협의와 동의를 해준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한·미·일 삼국이 대만 사태에 대한 비상계획을 공동으로 수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지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비밀 계획을 공개하지 않을 뿐이지 대만 위기 때 삼국의 행동을 통일하자는 목표와 구상은 꽤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삼국이 대만 사태 공동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군수품 공동비축 등 군사적 준비태세를 촉진하는 임무를 유엔사가 담당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은 한-미 동맹과 같은 양자동맹을 시대의 퇴물로 인식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군사적 우위가 빠르게 잠식된 미국은 오커스(오스트레일리아·영국·미국), 쿼드(미국·인도·일본·오스트레일리아), 한·미·일 안보협력체처럼 소다자주의 연합으로 군사정책을 재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엔사와 한미연합사도 동북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다자연합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일본은 화려한 전략적 수사를 남발하며 동북아 정세를 자신이 주도하려 하지만 정작 궂은일은 한국이 떠맡을 가능성이 크다. 2021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싱크탱크인 로위연구소의 ‘아시아 전력지수’에 따르면, 동아시아 국가 중 한국은 “훈련, 준비태세 및 유지” 부문에서 미국과 3.3점 차로 2위를 차지했으나 일본은 78.6점으로 8위에 불과했다. 변변한 공격무기나 상륙부대가 없고, 모병에 어려움을 겪는 일본 자위대는 행동하는 전투부대라기보다 머리만 제공하는 후방 기획사령부에 가깝다. 대만 사태 등에서 미국이 부족한 전투력을 보완하는 후보 국가는 다름 아닌 한국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전략 구상에 흡수되어 반복적으로 유엔사의 전쟁억지력을 강조하고 나토와의 연계를 강조해 왔다. 우리 대통령은 힘을 숭배하는 무장평화론 전도하며 우리의 군사력을 수출하여 위신을 세우려는 소영웅주의자다.
동아시아에서 양자동맹 시대를 청산하고 집단주의가 확산하는 일련의 움직임은 중세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던 제후국들의 기사단 연합과 유사해 보인다. 국가 간 경제적 상호의존으로 생산적 활력을 고양하고, 시민의 자유를 확대하며, 다른 가치와 규범을 존중하는 포용적 자유주의가 붕괴한다. 그 대신 장벽을 세우고 분쟁을 유발하며 시민을 통제하는 냉전형 안보지상주의가 귀환하는 신호가 나타났다. 안보 국가는 일상적 안보 위기 속에서 야당과 언론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용산 전체주의가 번식할 비옥한 토양이다. 안보 위기와 극우 통치는 바로 이 정부의 기사도 정신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영상] “김행 줄행랑에 ‘김행랑’ 됐다”…청문회 이틀째 파행
- [영상] 김행, 청문회하다 ‘행방불명’…국힘 “갑시다” 하자 자리 박차고 나가
- 놀자고 만든 스포츠 클릭 응원에 “제2 드루킹” 이 악무는 여권
- 밤하늘 8번째로 밝은 별, 알고보니 별이 아니었다
- 유엔사의 수상한 움직임과 대만 사태 [세상읽기]
- 푸틴, 프리고진 안 죽였다? “희생자들 주검서 수류탄 파편”
- ‘임금체불 1인 시위’ 분신 택시 노동자 열흘 만에 끝내 사망
- 열흘 빠른 가을 첫서리, 낮엔 기온 회복…주말엔 흐리고 비
- 방통위, ‘특정 결제방식 강제’ 구글·애플 680억 과징금
- 한동수 “손준성, 고발장 전달 앞서 윤석열 전 총장에 보고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