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이념 없이 진영만 남아…뭘 놓고 싸우는지 몰라”

류이근 2023. 10.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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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아시아미래포럼]대립과 배제를 넘어, 공존을 찾아 ③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조은주 전북대 교수∙김만권 경희대 교수 3인 좌담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왼쪽부터), 조은주 전북대 교수, 김만권 경희대 교수가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회의실에서 아시아미래포럼을 앞두고 대담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1야당 대표 단식, 체포동의안 통과, 지지자들 시위, 구속영장 청구와 기각. 한국에서 벌어지는 극한 정치적 대립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미국에서 3년 전 폭동으로 의사당이 점거됐고 전직 대통령마저 기소됐다. 상대편을 ‘적’으로 간주하는 적대정치가 팽배한다. 민주주의 위기는 패권경쟁,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 다중위기와 겹쳐 삶의 불안을 키운다. 오는 11일 ‘다중위기 시대: 공존의 길을 찾아’를 주제로 한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 맞춰 위기 원인을 짚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사를 세 차례 싣는다. 편집자

정치가 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되레 소외된 개인의 절망과 분노를 동원할 때 정치적 양극화를 키운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한국 등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공존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은주 전북대 부교수와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등 세명의 학자가 머리를 맞댔다. 좌담은 지난달 19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진행했다.

조은주 교수(이하 조) 한국 사회와 정치를 이야기할 때 고통스럽고 슬픈 감정이 올라온다.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는 판단 혹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전망이 반영돼 있다.

박상훈 연구위원(이하 박) 화나 분노를 정치가 더 확대하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김만권 교수(이하 김) 국민의 10.7%(2019년 유명순 서울대 교수 연구)가 심한 울분 상태다. 독일은 2.5%다. 젊은 사람, 1인가구, 비정규직, 소득이 적을수록 높다. 옳다고 믿는 세계와 현실의 간극이 클 때 생기는 일종의 좌절감에서 비롯한 감정이다. 국가나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생겨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달 21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 지지자들이 결집해 체포동의안 가결에 항의하고 있다. 고병찬 기자

민주화 이후 불평등 속도가 너무 빠르다. 계층 간 느끼는 만족감의 차이도 크다. 정당에서 세금도 못 내고 투표율도 낮은 노인, 1인가구 대상으로 선거운동도 하지 않는다. 이들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비정규직은 2년마다(임단협 협상 시기)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경험을 한다. 이런 영역에서 좌절감이 크다.

민주화가 디지털 기술 발전과 맞물린 지구적 시장 질서 형성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걸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격차가 확대됐다. 각자 개인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현실이 분노와 불평등, 국가나 사회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

과거 정치, 노조, 사회 운동 등 어떤 집합적이고 조직화된 과정을 통해 상황을 더 나아지도록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이제 그런 기대조차 무너졌다.

우리나라는 ‘결사’에 참여하는 비율이 낮다. 사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결속의 구조가 발전되지 않았다. 대신 국가 중심 사회의 특징을 갖는다. 결사가 발전하면 다른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당자자들 간 조정이나 협력이 되는데 그게 안 되니 거리로 나가야 하는 구조다.

국가 의존적 사회이지만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다. 이것이 불평등을 널리 지지하는 능력주의와 맞물려 있다. 정치와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적은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마지막 방패처럼 생명보험과 부동산에 집착하는 거다.

민주화 이후 운동의 활발한 증가가 결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표출되는 분노와 화에 포함된 요소를 해석하고 정치적 의제로 만들지 못했다. 지난 대선 때 ‘이대남’, ‘청년’이 큰 이슈였지만 분노를 ‘남초’ 커뮤니티에서 인증하는 방식에 그쳤다. 정치가 그러한 감정에 편승했지 청년 정책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낮은 결사는 노동 혐오와도 연관돼 있다. 노조 가입률이 낮다 보니 가입한 10~15%의 사람이 특권집단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이들이 권리를 위해 싸우러 나가면 정치는 귀족노조로 공격하고 사람들은 이에 동조한다. 정치가 이들을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이 받아야 할 공격을 옮겨놓는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가진 규율의 힘은 강한데 국가가 다양한 사회정책을 통해서 사람들의 직업과 소득 생활의 구조를 재편하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작은 국가다. 개인을 좌우하는 것은 능력주의라 부르는 시장메커니즘이다. 정치는 정부를 통해서 사회나 개인의 경제적 삶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국가의 ‘소유권’을 누가 잡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이념 갈등이 너무 없는 사회다. 진영 대립만 있다. 한국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지 답을 내놓지 않은 채 개인적 호불호만을 말한다.

양당 체제에서 큰 이념적 논쟁을 해본 적이 없다. 차이가 거의 없다. 어제의 대통령과 오늘의 대통령이 싸우고 미래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를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간다. 이념 없는 최고 권력 소유권을 둘러싼 싸움은 모든 곳을 분열시킬 수 있다.

친일, 종북은 이념이 아니고 진영 대립을 표현하는 용어다. 식민지와 분단 경험은 다른 양극화 요소와 결합해 쉽게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

정당들끼리 이념적 갈등이라 부르는 것이 사실은 반이념이다. 억지로 상대를 혐오하기 위해 동원된 요소다. 정치 세력의 이름이 복지파, 성장파가 아니라 친문, 친명 등 누구랑 친한가로 지어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념 갈등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건 공산 전체주의(윤석열 대통령의 언급)다. 이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싸우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가 아니라 극우파와 우파가 있다. 우리 양당제에는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상호 인정하는 문화가 없다. 또 제도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자제력도 없다.

양당이 무엇을 두고 다투는지 알 수 없다. 양쪽 다 여당일 때는 여당스럽고, 야당일 때는 야당스럽다. 지금 민주당이 노동 문제에 적극적이지만 집권당일 때는 그렇지 않았다. 서로 적대하는 것에 문제의 원인이 있지 양당제 자체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22년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정치가 미래 권력을 누가 쥐느냐에 올인하면서 적대주의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불평등 확대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개입 측면에서 양당 모두 굉장히 미약하다. 코로나 당시 삶의 악화를 막기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은 세계적으로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한국의 시장주의가 국가주의와 결합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겉으로 복지를 얘기하면서 의회에서 가장 많이 내는 게 감세 법안이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국가의 대표적인 노력은 세금과 노조다. 우리는 둘 다 못하고 있다. 국가의 보호 없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익의 극대화밖에 없다. 밀려난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 된다. 이들을 혐오하고 경멸한다. 능력주의는 항상 노력주의로 변모한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 하층의 불만을 드러냈다. 그런데 한국의 양극화는 무엇이 있었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교육받은 중산층 목소리만 있다.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트럼프 현상보다 더 나쁘다. 트럼프는 정확히 대변하는 집단이 있다. 그들의 감정을 이끌어내 정치적 지지로 연결시켰고 그들을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으로 조직화해내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걸 포퓰리즘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했을 때 한국에는 그런 것도 없다.

미국 정치도 양당 체제가 작동하기 위한 일종의 가드레일이 있다. 한국도 있었다. 국회는 법을 어기는 것보다 선례나 규범을 어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 게 많이 깨졌다. 국회법대로만 하려 한다. 그 전에는 교섭으로 문제를 풀려 했다. 지금은 누구를 더 잘 공격하느냐로 지지자들에게 평가받는 구조다. 잘 싸웠느냐가 아니라 규범을 잘 지키면서 의미 있게 다퉜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면 좋겠다.

자기 진영을 비판하는 것도 필요하다. 적어도 민주 진영에 자아비판이 필요하다. 이것을 안 하니 진영 문제가 증폭한다. 미국은 공화당이 양극화를 일으켰지만 한국은 민주당이 그 키를 쥐고 있다.

거악과 싸운다고 하는 구조를 넘어 긴 호흡으로 갈등을 살펴야 한다. 촛불 이후 분노와 화, 적대주의 정치가 왜 이토록 증폭했는지, 촛불이 무엇을 남겼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분열된 사회일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성보다 직관적 이해와 감성적 토대 같은 것들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정당이 진영으로 분리되면서 갈등 구조가 확대되고 ‘공통감각’이 사라졌다. 민주화 이후 보수세력은 이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이전 보수세력은 늘 정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만들어진 세력은 정치 경험이 없다. 정치 규범 없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행동한다.

민주당은 과거 민주당이 아니고 국민의힘도 과거 보수당이 아니다. 보수 특징은 조직 기반이 단단하고 품위가 있었다. 보수는 그것을 잃어버렸고 아웃사이드(외곽)에 있는 세력이 정당을 장악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박상훈 연구위원은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지냈고 ‘혐오하는 민주주의’ 등을 펴냈다. 조은주 교수는 사회변동과 불평등 등을 전공했으며 ‘가족과 통치’ 등을 저술했다. 김만권 교수는 정치철학을 전공했으며 ‘호모저스티스’ 등을 지었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노영준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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