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불법 영어유치원’ 공약 논란 되자 “방과후과정 얘기였다”

이유진 2023. 10. 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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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나선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 공보물.

오는 11일 치러지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나선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가 공약집에 명칭 자체가 불법인 ‘영어유치원’을 쓰고 ‘영어유치원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부적절한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김 후보 쪽은 “방과후과정에서 영어를 강화한 유치원을 의미한다”고 밝혔지만, 이를 ‘영어유치원 유치’라고 표현한 것도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6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설명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올라온 김 후보의 5대 공약 및 선거공보물을 종합하면, 김 후보의 5대 공약 가운데 하나는 ‘명품 교육도시 강서’다. 김 후보는 “강서구에 좋은 학교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타 지역으로 이전하는 비율이 높다”며 세부 목표로 △전국 단위 자율형사립고 유치로 명문학군 조성 △영어유치원 유치 및 강남급 학원가 조성으로 교육도시 완성 등을 꼽았다.

2019년 교육부 블로그에 올라온 유아 대상 영어학원 관련 카드뉴스

문제는 영어유치원이 실제로는 정식 교육기관이 아닌 학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모든 유치원은 국가 수준의 공통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을 가르치는데 영어 전용 누리과정이 없는 만큼 정식 교육기관으로서의 영어유치원은 현재로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다만 방과후과정에서 노래, 게임 등 놀이 중심의 영어를 1일 1개 1시간 이내에서 배울 수 있다. 정규 영어 수업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된다.

영어유치원은 유아 대상 영어학원 가운데 일부가 실용 외국어로 교습 과목을 등록해놓고 예체능과 한글까지 가르치고 급식을 제공하며 유치원이 아닌데도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현행 학원법에 따르면 민간에서 운영하는 학원은 반드시 고유명칭 다음에 학원을 붙여 표시해야 하고 이를 어길 땐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 유아교육법에서도 유치원이 아니면서 유치원이나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심한 경우 시설 폐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교육부도 카드뉴스 등을 통해 “유치원 인가를 받지 않은 사설학원이 영어유치원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또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전국 17개 시도의 반일제 이상 유아 대상 영어학원 847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와 점검을 실시해 총 518건의 위법·불법 사례를 적발했는데 이 가운데 ‘학원 명칭 표시 위반’ 사례가 66건(서울 13건)에 달했다.

지난 3월 교육부 블로그에 올라온 유아 대상 영어학원 관련 카드뉴스

교육부도 지난 6월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며 영어유치원을 겨냥했다. 교육부는 유아 영어학원 등 사교육 저연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이러한 변화 추세에 맞는 사교육 대응체계 및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이 고액의 유아 영어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이유는 높은 학부모 기대에 견줘 유아 공교육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라며 공교육에서 유아 학부모의 다양한 교육 수요를 흡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영어·예체능 등 수요가 높은 방과후과정 운영을 위한 재정 지원 확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연계한 ‘이음학기’ 운영 등이 주요 방안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당시 브리핑에서 “그동안 사실상 방치되었던 유아 사교육 문제에 대한 조속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일부 유아 영어학원들의 편법 운영을 정상화하고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김 후보의 선거공보물에는 이 부총리와 김 후보가 악수를 나누는 사진 아래 영어유치원 유치 등 김 후보의 공약이 나열돼 있다.

김영호 의원은 “대한민국 사교육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대한 점검·단속에 이어 대대적인 유아 대상 사교육 실태조사 계획까지 밝힌 이 부총리가 영어유치원 유치 공약과 함께 김 후보의 선거공보물에 등장하게 된 경위에 대한 명백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원 유치와 학원가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이날 한겨레에 “윤석열 정부 들어 사교육비가 조사 이래 역대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공직 후보자가 공교육 강화와 관련된 공약은커녕 영어유치원 유치, 학원가 조성 등을 내세우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 쪽은 공보물을 오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 쪽은 이날 한겨레에 “공약집에 쓴 ‘영어유치원’은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아니라, 방과후과정에서 영어를 강화한 유치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를 영어유치원이라고 명명한 것은 노인유치원처럼 두드러진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시행 중인 방과후과정 영어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면, 이를 ‘영어유치원 유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일 열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자 티브이(TV) 토론회에서도 권수정 정의당 후보는 김 후보를 향해 “영어유치원을 유치한다는 공약을 했는데 유아교육법상 (정식 교육기관으로서의) 영어유치원 자체를 설립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김 후보는 “영어 교사를 기존 유치원에 끌어오면 영어유치원이 유치되는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나선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의 5대 공약 일부.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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