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악취 관리의 핵심, 국가 자격 '취기판정사' [출구 없는 사회적 공해 악취]

오지혜 2023. 10.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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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 후각시험 통과해야... 3300명 활동
악취 포집부터 판정시험까지 전반 관리
화장품, 유품정리 회사에서 활동하기도
악취 해결책 내놓는 컨설턴트로 변신중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일본 도쿄 히노시에 위치한 주식회사 환경관리센터의 냄새·향기랩 소속 취기판정사 모로이 스미토씨가 8월 24일 냄새봉지를 들고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고 있다. 히노=오지혜 기자

일본의 악취 관리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데는 '취기판정사'가 크게 기여했다. 취기판정사는 악취 현장 포집은 물론, 판정시험 전반을 관장한다. 이들은 어떻게 냄새 전문가가 되고,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직접 찾아가봤다.


합격률 30% 고난도 필기 시험

취기판정사가 되기 위해서는 필기와 실기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필기 시험은 난이도가 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통계 기법이나 악취 물질의 특성 등을 묻는데, 6개월~1년 준비해 시험을 쳐도 합격률이 20~30%에 그칠 정도라고 한다.

8월 28일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시에 위치한 악취측정인정사업소 ERS에서 시연 중인 후각 능력 검사 시험. 왼쪽 사진은 시험에 사용되는 기준시약이고, 오른쪽 사진은 무취액과 기준시약을 적신 종이들. 이날 현장을 찾은 기자는 정답률 100%로 시험에 통과했다. 오카자키=오지혜 기자

실기 시험은 냄새에 아주 예민하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다. 후각이 보통 사람 수준이어야 누구나 납득 가능한 악취 판정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무취액을 바른 종이들 사이에서 기준시약을 바른 종이 한 장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베타페닐에틸알코올(장미꽃 냄새), 메틸사이클로펜테놀론(달달한 냄새), 이소길초산(땀 냄새) 등 5가지 기준시약 검사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취기판정사들은 대부분 악취측정인정사업소에서 악취 시험 전반을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악취가 발생한 현장에서 냄새를 포집하고, 악취 판정시험에 사용할 냄새봉지를 만든다. 냄새봉지는 악취에 무취 공기를 적정한 희석배수로 섞어 만들고, 6명의 악취판정원(패널)에게 무취봉지 2개와 냄새봉지 1개를 주고 냄새봉지를 찾는 과정을 반복해 판정시험을 진행한다. 이렇게 최종 취기지수를 계산해 의뢰인에게 결과를 통보하면 된다. 아울러 패널들의 후각 검사도 취기판정사의 몫이다.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시에 위치한 악취측정인정사업소 ERS 관계자가 8월 28일 현장에서 냄새를 포집하는 장치를 보여주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악취 판정시험에 사용하는 특수 봉지에 무취 공기를 채우는 모습. 오카자키=오지혜 기자

냄새향기협회는 측정소에서 이뤄지는 시험의 정확성을 파악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시험을 낸다. 소속 취기판정사가 제대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 사업소에 일괄적으로 악취가 담긴 통을 보내고, 해당 악취의 취기지수가 얼마인지 제출하게 한다. 악취측정인정사업소 ERS의 호소가와 게이코 부장은 "측정소마다 결괏값을 제출하면 평균이 나오는데, 이 평균값과 차이가 많이 나는 측정소는 인증이 취소된다"면서 "시험이 매우 어려운 편"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냄새향기협회에서 악취측정인정사업소 ERS에 보낸 스프레이. 이 안에 들어 있는 시험용 악취의 취기지수를 계산해 협회에 보낸 다음 정확도 평가를 통과해야 인정사업소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오카자키=오지혜 기자

취기판정사들은 화장품 회사, 탈취제 회사 등 냄새·향기와 관련된 다양한 기업에서 일하기도 한다. 스케카와 히데모토 취기판정사회 회장은 "취기판정사가 유품정리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고독사처럼 시신이 오래 방치되면 냄새 탈취가 어렵다 보니 이들을 고용하거나 기존 직원이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악취 해결 서비스 보편화 시도

일본 취기판정사회 스케카와 히데모토(오른쪽) 회장과 주식회사 환경관리센터의 냄새·향기랩 소속 취기판정사 모로이 스미토씨가 8월 24일 일본 히노시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히노=오지혜 기자

취기판정사들은 악취 분석을 넘어, 악취 저감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냄새 전문가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도 내놓을 수 있어서다. 1970년대부터 악취 산업에 종사해온 스케카와 회장은 음식물 쓰레기로 비료를 만드는 공장의 악취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소개했다. 문제의 공장은 탈취 장치를 쓰고 있었지만, 200m 떨어진 민가로부터 냄새가 난다는 민원을 5년째 받고 있었다고 한다. 원인 파악을 위해 그는 사업장 내에서 연기를 피워 냄새의 이동 경로를 확인했는데, 공장 문이 여닫힐 때마다 연기가 빠져나와 민가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문틈을 단단히 막고, 커다란 팬을 가동시켜 냄새가 민가로 가지 못하게 막았더니 민원이 사라졌다.

일본 취기판정사회 스케카와 히데모토 회장의 자격증. 왼쪽은 취기대책 어드바이저, 오른쪽은 냄새향기 어드바이저 자격증이다. 도쿄=오지혜 기자

냄새향기협회는 이처럼 해결책을 널리 제공하기 위해 2019년부터 '냄새향기 어드바이저' 제도를 시작, 전국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초기엔 소수의 취기판정사들에게 '취기대책 어드바이저' 자격증을 발급해 지방자치단체나 기업들의 문제를 제한적으로 해결했다면, 개인에게까지 서비스를 보편화한 것이다. 현재까지 70명 정도가 자격증을 취득해 활동 중이다.

※본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도쿄, 히노, 오카자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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