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데뷔 9년 만에 첫 선역 오승아 “가족이 있어 힘낼 수 있었어요”[스경X인터뷰]
“이번 연기를 하며 느끼는 게, 정말 많이 웃어요. 늘 극 중에서 엄마의 눈치, 아빠의 눈치를 많이 봤거든요. 웃음보다는 가식적인 표정을 많이 했다면, 이번에는 정말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고 행복감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좋아요.”
딱 9년 만이었다. 배우 오승아는 걸그룹 레인보우의 멤버로 활동 중이던 2014년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단역으로 데뷔했다. 그 후 9년, 그의 이미지는 악역으로 점철됐다. ‘부잣집 태생’이지만, ‘욕망에 거침이 없고’ 늘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는 캐릭터는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오는 23일 첫 방송 되는 MBC 새 일일극 ‘세 번째 결혼’에서 오승아의 입지는 달라진다. 드디어 밝은 느낌의 주인공에 처음 나서기 때문이다. 벅찬 감정과 각오를 전하기에 드라마가 공개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추석을 앞두고 ‘스포츠경향’과 마주 앉은 오승아는 지금의 행복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정다정이라는 인물이에요.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이지만, 오기도 장착했죠. 드라마가 조작된 삶을 사는 여자와 거짓을 파헤치고 응징하려는 여자가 파란만장한 진실게임을 벌이는 내용인데, 거짓을 파헤치고 응징하려는 여자를 맡았죠.(웃음) 극 초반에는 남자 주인공과 멜로도 있고 로맨스 코미디의 요소도 있는 역할입니다.”
그의 변신은 ‘세 번째 결혼’ 서현주 작가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방송된 MBC ‘두 번째 남편’에서 윤재경 역을 맡았다. 주인공의 애인을 유혹해 갈라놓게 하고, 주인공에게 살인누명도 씌운다. 살인과 횡령 등 갖은 악행을 다하던 그는 30년형이 구형돼 복역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두 번째 남편’의 악역이 그 정점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말 처참한 결말이었는데, 작가님께서 제게 ‘승아씨, ’두 번째 남편‘의 악역을 잘 만들었는데 언젠가 선역도 해봤으면 해요. 새로운 캐릭터로 만들어주고 싶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죠.”
2017년 KBS2 ‘그 여자의 바다’ 속 무기력한 윤수인을 비롯해 2018년 MBC ‘비밀과 거짓말’의 신화경, 2019년 MBC ‘나쁜사랑’의 황연수, ‘두 번째 남편’의 윤재경, 지난해 KBS2 ‘태풍의 신부’ 강바다 등 오승아의 악역경력은 7년이나 된다. 그런 경력이 오래된 누구나 그렇듯 평소에도 행실과 성격을 의심(?)받게 된다. 오승아도 그랬다.
“악역이 반복되면서 스트레스가 되는 부분은 있었어요. 예를 들면 친구의 어머니께서 친구에게 ‘원래 저런 애 아니냐?’고 이야기하실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더라고요. 레인보우 멤버들도 촬영장에 커피차를 보낼라치면 ‘얘 원래 착한 앤데’라고 써서 보내기도 했어요. 원래 성격이 털털하고 밝은 편이라 그 부분을 감춰야 한다는 게 힘들었죠.”
직접 만난 오승아는 정말 털털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곧바로 물어보기도 하고, 기자의 안부도 챙긴다. 이런 모습이 촬영장에서도 줄곧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사실 그런 마음으로 독하고 뜨거운 악역의 기운을 견뎌냈다. 물론 먼저 이러한 길을 겪었던 선배들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세 번째 결혼’ 촬영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이번 작품의 악역 강세란 역 배우 오세영에게도 해주고 있다.
“엄현경 언니나 박하나 언니 등 선배들도 다 악역으로 시작했다 선역을 한 분들이에요. 언니들이 해줬던 이야기가 ‘TV에 꾸준히 나오는 게 중요하다.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쉬는 것보다는 계속 연기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줬어요. 이번 캐스팅에 앞서서도 다 잘 됐다고 이야기해주시고 ‘네가 할 작품을 한 것’이라고 함께 기뻐해 주셨죠.”
무엇보다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데는 가족의 힘도 컸다. 오승아는 “오롯이 가족의 사랑과 응원으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악역을 하는 연기자에게 오는 스트레스는 그가 평소에 얼마만큼 단단하고 넓은 속을 지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오승아는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부모님의 사랑이 중요해요. 나쁜 아이가 되면 댓글이나 반응 때문에 상처를 받곤 하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도 저를 사랑해주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외롭고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작품의 악역을 하는 후배 (오)세영이에게도 ‘좋은 날로 가는 과정’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멤버들의 사랑도 크다. 레인보우는 2009년 데뷔해 2016년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하지만 멤버들 사이의 유대나 결속은 계속 이뤄져 왔으며 데뷔 10주년이었던 지난 2019년 레인보우의 이름으로 앨범을 내기도 했다.
“멤버들이 다 책임감이 있고 열심히 살고 있어요.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고 성실히 살고 있는 게 대견하기도 하고요. 이제 결혼한 친구들은 출산을 준비하기도 해서 다시 모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당장은 공연이나 음반 계획은 없지만, 또 모르죠. 어느 기회에 다시 모일지도.”
일일극의 악역 틀에서 벗어난 오승아는 이제 선역 뿐 아니라 시간대와 장르도 넘어서고 싶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박민영처럼 사랑스러운 역할도 하고 싶고, 김순옥 작가의 작품처럼 제대로 된 악역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긴 인내의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에 생긴 마음이다. 오승아는 정말 지금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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