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샤넬도 디올도 납작’… 고가품 브랜드, 명절 조공으로 VIP 붙잡기
누군가는 어떤 브랜드 제품을 사기 위해 몇 시간을 서서 기다린다. 소위 오픈런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가만히 앉아서 그 브랜드가 주는 선물을 챙긴다.
샤넬, 루이비통,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가 명절을 앞두고 극소수 VIP 고객에게 보내는 선물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 브랜드는 콧대 높기로 유명하다. 돈이 있어도 판매하는 제품 갯수에 한계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전 구매 실적에 따라 살 수 있는 제품을 구분하기도 한다.
VIC와 VIP에게는 다르다. VIC(Very Important Customers)는 특정 시장에서 자사 브랜드 제품을 많이 산 상위 1~3% 수준 소비자를 말한다. VIP(Very Important Person)에는 이해관계가 얽힌 유통채널 고위 관계자 혹은 정·관계 인사가 속한다.
이들 브랜드는 설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 때마다 VIC, VIP에게 특별히 제작한 선물을 보낸다. 전문가들은 여느 선물이 그렇듯 이미지가 중요한 이런 브랜드들이 그 해 어떤 선물을 보냈는지 여부가 해당 브랜드의 감(感)을 엿보는 기회라고 말한다.
올해 이들 고가품 브랜드는 예년보다 추석 선물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직후 불었던 보복 소비 열기가 서서히 가시기 시작한 데다, 하반기부터 확연히 경기가 움츠러든 탓이다.
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다수 브랜드는 올해 추석 선물로 자사 정체성을 담은 생활용품을 준비했다.
샤넬 뷰티(Chanel Beauty)는 애플리케이션(앱) 기준 골드 등급 VIC에게 추석 선물로 샤워 가운을 마련했다.
샤넬 뷰티는 프랑스 브랜드 샤넬이 선보인 화장품 라인이다. 이 브랜드 골드 등급은 연간 최소 1200만원을 써야 턱걸이로 딸 수 있는 자격으로 알려졌다. 매달 100만원씩 꼬박꼬박 샤넬 화장품을 사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샤넬 뷰티는 평소 명절을 앞두고 화장품을 담는 작은 가방이나 손목 장식, 스카프를 주곤 했다. 올해는 선물 규모와 가격을 평소보다 높였다.
이번에 샤넬 뷰티가 제공한 샤워 가운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비매품이다. 그러나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추석 이후 일부 제품이 드물게나마 20만~30만원에 팔리고 있다. 가운이 필요없는 VIC들이 처분하기 위해 내놓은 제품으로 추정된다.
같은 프랑스 브랜드 디올(Dior)은 차를 우릴 때 쓰는 티 스트레이너(거름망)를 줬다. 티 스트레이너 옆에는 중국 남부 지역에서 명절에 즐기는 주사위 게임 보빙(博饼)용 둥근 사발을 함께 넣었다.
영국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은 온도가 바뀔 때마다 로고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유리잔 세트를 보냈다.
일부 브랜드는 으레 명절에 오고 가는 먹을 거리를 선물로 골랐다. 특히 올해 디저트 업계를 휩쓴 전통과자 약과가 강세를 보였다.
영국 패션 브랜드 버버리는 프리미엄 약과 브랜드 골든피스가 만든 약과를 선물했다. 골든피스는 지난달 뉴욕타임스(NYT)가 ‘현재 뉴욕에서 예약하기 가장 어려운 레스토랑보다 골든피스 약과를 구하기가 더 힘들다’고 평가한 디저트 가게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셀린느(Celine) 역시 명인이 만든 약과에 브랜드 로고를 음각으로 새겨 VIC에게 증정했다.
보통 고가품 브랜드 VIC와 VIP 관련 정보는 철저하게 베일에 쌓여 있다. 산정 기준과 인원 수 모두 제각각이다. 이들 브랜드 VIC가 되려면 전담 셀러를 두고 매년 최소 수천만원에서 최대 3억원 이상을 써야 한다.
VIC 기준을 일정 금액이 아니라, 비율에 따라 정하는 브랜드도 있다. 직전 해와 같거나 더 많은 금액을 썼더라도 순위에서 밀리면 명절 선물을 보내는 특별 관리 대상에서 벗어난다. 올해 루이비통과 샤넬 VIC 기준 실적은 1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들 브랜드와 명절 선물을 함께 준비했던 한 디저트 업체 관계자는 “준비하는 물량이 200~300개 안팎으로 극소수”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선물 사진을 올리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적힌 메모를 함께 넣어 달라고 부탁하는 브랜드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올해 샤넬 뷰티 샤워 가운처럼 비매품이 공식 제품처럼 팔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조치다.
SNS 같은 공개 채널에 선물이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브랜드가 명절 선물로 거두는 마케팅 효과는 거의 없다. 그래도 너무 저렴하거나 성의없는 선물을 마련하진 않는다.
대체로 매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정도를 한 브랜드에 쓰는 소비자는 본인 부(富)를 과시하기 보다, 그저 본인이 해당 브랜드가 품은 이미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브랜드가 선물을 고르는 안목 역시 이미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평가 지표로 여긴다.
VIC끼리 그 해 여러 브랜드 명절 선물을 놓고 오고 가는 품평도 쉬이 넘기기 어렵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퍼지는 강한 입소문 효과는 해당 브랜드 매출를 넘어 브랜드 이미지까지 끌어 올린다. 일부 브랜드는 차별화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설과 추석 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와 VIC 생일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브랜드 포지셔닝 전문가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VIC에 명절 선물 같은 특혜를 주면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는 만족감이 크게 작용한다”며 “마케팅 비용을 소모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기 보다 지속적인 충성도를 강화한다는 측면으로 봐야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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