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 ‘7인의 탈출’, 이번엔 ‘순옥적 허용’ 안 통하는 이유

남지은 2023. 10. 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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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시청률 비례한 전작과 달리
가장 자극적인데 반응 미지근…왜?
에스비에스 제공

개연성 따위 필요 없다. ‘그’가 맞다면 맞는 거다. 고등학생이 학교 미술실에서 아이를 낳아도 발각되지 않는 거고, 성인 28명이 집단 환각에 빠져 서로 죽이고 죽어도 살아남은 7명이 말만 맞추면 없던 일이 되는 거다. 얼굴을 붕대로 감아 감추면 죄수가 바뀌어도 교도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거다.

말이 되냐고? ‘김순옥 월드’에서는 다 된다. 이른바 ‘순옥적 허용’이다. 시청자들이 김순옥 드라마가 황당하더라도 “김순옥 작가니까 그러려니 해준다”는 의미다. 자극적인 설정에 눈살이 찌푸려지더라도, 어느새 그 맛에 빠져 계속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내의 유혹’부터 ‘펜트하우스’까지 논란이 커질수록 시청률도 뛰었다.

에스비에스 제공

맥락 없는 전개에 면죄부를 주던 이 ‘순옥적 허용’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다. 지난달 15일 시작한 에스비에스(SBS) 금토 드라마 ‘7인의 탈출’은 김 작가 작품을 통틀어 가장 자극적이고 가학적인데 시청률과 화제성은 낮다. 1회 6.9%(이하 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해 최근 방영한 6회가 7.3%다.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중이라지만, ‘펜트하우스’ 시즌1(2020·SBS)이 1회 9.2%로 시작해 2회 만에 두 자리(10.2%) 시청률을 찍은 것에는 못 미친다. 그동안 김 작가의 작품은 논란과 시청률이 정비례하지 않았던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막장도 막장 나름”이라고 했다. “‘7인의 탈출’은 개연성과 자극성에서 시청자들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전작들이 그래도 숨 돌릴 틈을 줬다면, ‘7인의 탈출’은 1회부터 짜고 치는 상해 사건을 시작으로 악행이 휘몰아친다. 돈을 좇는 금라희(황정음)는 사업자금 만드는 데 이용하려고 어릴 때 버린 딸 방다미(정라엘)를 데려오지만,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자 학대하고 살해를 시도한다. 5~6회에서는 아예 ‘19금’을 내걸고 수십명이 핏빛 생존 게임을 벌인다. 상대를 갯벌에 밀어 넣어 징검다리 삼고, 탈출 보트에 오르려는 사람을 흉기로 가차 없이 공격한다. ‘펜트하우스’에 이어 ‘7인의 탈출’에 출연하는 엄기준은 지난달 14일 제작발표회에서 “‘7인의 탈출’은 마라 맛을 넘어 죽을 맛”이라고 표현했다.

에스비에스 제공

김순옥 드라마를 관통하는 규칙인 선한 인물을 벼랑 끝에 내모는 과정도 이번엔 몹시 가학적이다. ‘아내의 유혹’(2008·SBS)에서 구은재(장서희)가 점 하나 찍고 ‘편하게’ 다른 사람 행세를 했다면, ‘7인의 탈출’ 이휘소(민영기)는 원조교제범에 마약범으로 몰리고 강기탁(윤태영)이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고 성형 수술을 한 뒤에야 매튜 리(엄기준)가 된다. 윤석진 교수는 “김 작가 작품을 욕하면서도 보게 만든 힘은 악행 중간중간 사이다 같은 통쾌함인데, ‘7인의 탈출’은 완급 조절에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했다.

‘7인의 탈출’은 주인공 여러명이 악인이고 그들이 똘똘 뭉쳐 선한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점에서 ‘펜트하우스’ 구성과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번에 반응이 다른 것은 악행의 주체가 상류층에서 서민으로 바뀐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펜트하우스’는 집값 1번지와 교육 1번지 욕망의 공간에서 상류층 사람들이 악행을 벌이기에 아무리 자극적이더라도 나와 거리 두기를 하며 혀를 찰 수 있었다. ‘7인의 탈출’은 서민이 성공하려고 살인을 하는 모습이 불편하고, 복수의 주체와 대상이 모두 서민이라는 점에서 통쾌함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한 지상파 방송사 피디는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살기 힘들었을 때는 드라마에서 희망을 봐야 하는데, ‘7인의 탈출’은 시청자한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에스비에스 제공

‘7인의 탈출’은 다시 살아나기, 변신하고 복수하기 등 김 작가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한 설정이 반복되어 긴장감마저 주지 못하고 있다. 방칠성(이덕화)이 손녀 방다미를 도우려다가 며느리 금라희와 동거인 차주란(신은경)한테 살해당했지만 살아 돌아올 거란 걸 이젠 시청자들도 안다. 복수극에서 예측 가능한 전개는 치명적이다. 윤석진 교수는 “‘7인의 탈출’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설정이라도 상황을 만들어 밀어붙이면 된다는 작가의 자만심과 안일함이 느껴진다”며 “‘순옥적 허용’의 진짜 뜻은 맥락 없음에 대한 비판이라는 걸 알아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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