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자 1400만 시대…행동하는 자본시장 주체들
4월 주가조작 사태 계기로 당국, 인력 확대 계획 내놔
소액주주·사모펀드 움직임 활발…주주행동주의 증가세
'최근 자본시장 참가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불법행위 가능성도 확대되고 있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체계 개선방안을 내놓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개선방안 설명을 맡았던 김정각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은 "동학개미운동 이전인 2019년에는 주식투자자수가 600만명 정도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모든 국민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늘어난 주식투자자 수만큼 불공정거래 가능성도 커졌다고 본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 담당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고 인력을 늘리는 등 외형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주식투자자 수가 늘어나면서 일명 동학개미라고 불리는 소액주주들 역시 자연스럽게 세력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목소리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지분을 모아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다. 또 본래 주주행동주의를 펼쳤던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2019년 대비 주식투자자 수 2배 늘어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6개월에 1번 이상 주식투자를 하는 주식투자자 수는 614만명이었다. 이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투자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20년 914만명 △2021년 1374만명 △2022년에는 1441만명을 기록하면서 3년새 2배 이상 늘었다.
투자자 수 증가와 더불어 주식거래 규모도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2019년 2288조원이던 주식거래대금은 2020년 5709조원, 2021년에는 6768조원까지 커졌다. 2022년에는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등의 여파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거래대금이 3914조원으로 전년 대비 급감했지만 2019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많은 수치다.
투자자 수와 거래대금만 불어난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주식시장 상장종목도 크게 늘었다.
2013년 1965개이던 상장종목은 2019년 2464개로 증가했고 △2020년 2531개 △2021년 2606개 △2022년 2692개를 기록했다. 2013년과 비교하면 1.4배 늘어났다.
자본시장 감시 인력은 오히려 줄어
이처럼 투자자 수와 거래대금, 상장종목 수가 늘면서 자본시장은 외형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본시장을 감시하는 금융당국과 유관기관 인력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금융위‧금감원‧한국거래소의 심리 및 조사인력은 2013년 195명이었지만 2019년 162명, 2022년 150명으로 감소했다.
특히 금감원과 거래소의 인력 감소가 두드러진다. 금감원의 심리‧조사인력은 2013년 106명이었지만 2019년 77명, 2022년 69명으로 2013년 대비 35% 줄었다. 거래소의 심리‧조사인력은 2013년 71명, 2019년 63명, 2022년 56명으로 2013년 대비 21%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금융위 심리‧조사 인력은 2013년 18명에서 2019년 22명, 2022년 25명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금감원과 거래소의 인력이 크게 줄면서 전체 금융당국의 심리‧조사인력은 감소했다.
자본시장의 외형적 성장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금융당국의 모습은 고스란히 조직 및 인력 확대 개선책으로 이어졌다. 특히 당국이 이번 불공정거래 대응체계 개선방안에 자본시장 감시 인력을 늘리기로 한 것은 지난 4월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늘어난 주식투자자와 상장종목을 모두 커버할 수 있을 만큼 당국 인력이 넉넉지 않았고 인력 부족이 대규모 주가조작 사태로 이어지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개선책을 통해 당국은 금융위‧금감원‧거래소의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이미 금감원은 지난 5월 조사부서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70명에서 95명으로 인력을 늘렸다. 금융위와 거래소 역시 인력보강에 초점을 맞춰 조직을 개편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불공정거래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당국이 인력 늘리기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정각 상임위원은 "금융위‧금감원‧거래소의 조직이 일정부분 늘어났지만 공매도 대응 등에 활용을 했다"며 "가장 본류라고 할 수 있는 불공정거래 대응을 위한 담당 인력은 실질적으로 줄었고 이번에 이를 보완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소액주주들
변화하는 자본시장에 대비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이미 소액주주들은 자신들끼리 모여 기업에 목소리를 높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서로 연대해 회사의 물적분할, 배당정책 등 각종 안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행동주의펀드 KCGI(강성부 펀드)가 DB하이텍 지분을 취득하면서 소액주주와의 연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소액주주들이 연대해 물적분할로 떨어져 나온 자회사 SK온의 중복상장을 반대하고 있다.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이화그룹 종목들에 투자한 주주들도 온라인 플랫폼 액트(αCT)를 통해 십시일반으로 지분을 모아 주주행동주의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이아이디(17.2%), 이화전기(17%), 이트론(11%)의 지분을 모아 이화그룹 3개 계열사에서 2대 주주 자리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소액주주들의 지분은 지분 보유목적을 경영권 영향으로 표기해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5% 이상 지분 보유 시 의무적으로 공시)로 공시되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액트는 전자위임 플랫폼으로 이화그룹뿐만 아니라 DB하이텍, KT, OCI, 알테오젠 종목에 투자한 주주들이 이를 통해 의결권 위임과 공동보유약정, 주주제안 등을 진행했다.
최근 액트와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자기주식 소각 캠페인, 배당확대 등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모아 주주행동주의를 적극 펼치기로 했다.
소액주주들 간의 연대뿐만 아니라 자본력 있는 주주인 슈퍼개미가 단독으로 상장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슈퍼개미로 불리는 김기수 프레스토투자자문 대표는 지난달 24일 다올투자증권의 보유목적을 일반투자에서 경영권 영향으로 변경했다. 김 대표(특수관계자 포함)는 다올투자증권의 2대 주주다. 이번 보유목적 변경은 임원 선임 및 해임 등 보다 적극적으로 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다.
행동주의 고전…사모펀드 영향력 여전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SM엔터테인먼트와 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주주행동주의를 펼친 얼라인파트너스처럼 자본시장에 미치는 사모펀드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소액주주들이 결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기존에는 사모펀드 운용사를 중심으로 행동주의가 이뤄졌다. 또 과거에는 외국계 헤지펀드(소버린 사태 등)에 의해 주주행동주의가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국내 자본력을 바탕으로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주주행동주의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올해 초 DB하이텍 지분을 취득한 KCGI뿐만 아니라 KCGI자산운용(KCGI가 옛 메리츠자산운용을 자회사로 편입)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가량을 취득한 후 주주서한을 보내며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밖에 BYC(트러스톤자산운용), 남양유업(차파트너스) 등도 사모펀드운용사들이 주주행동주의를 펼친 사례다.
최근 KCGI운용은 사명변경 이후 내놓은 첫 공모펀드로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KCGI 환경·사회·지배구조(ESG)동반성장펀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해당 펀드는 지배구조 문제로 기업가치가 저평가 받고 있지만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투자자가 초과수익을 얻는 것이 가능한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다. 회사는 펀드투자를 통해 현금흐름개선, 주주환원정책 등 적극적인 주주행동주의를 펼칠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1일 '주주행동주의펀드 역할 확대에 따른 시장영향' 주제로 보고서를 공개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최근 국내에서 주주행동주의펀드의 활동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상법 개정과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등 시장 환경 변화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주주행동주의펀드 활동이 시작됐고 향후에도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주주행동주의 활동 초기에는 시장 대비 상대적으로 우수한 수익률이 나타났지만 지속적으로 성과가 유지되는 사례는 소수에 불과했다"며 "주주행동주의의 긍정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주주행동주의 활동에 대한 정보 제공과 주주환원정책 정비 등 향후 추가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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