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여행,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뀐 이유

김수진 2023. 10. 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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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은 종종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분주하게 오간다. 물음표로 시작한 여행에서 내내 두 감정이 무수히 교차할지라도 끝맺음은 느낌표이길 바라며.

어제와 오늘의 시간이 나란히 흘러가는 페낭

▷Flight to Malaysia
말레이시아항공은 인천과 쿠알라룸푸르를 오가는 직항편을 매일 1회 운항한다. 약 6시간 30분 소요.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 말레이시아 국내 및 아시아 지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여행을 이어갈 수 있으며, 페낭행 항공편은 하루 6편 이용 가능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페낭까지는 약 1시간이 걸린다.

●말레이시아는 처음입니다만

"말레이시아는 처음이에요!"라는 얘기에 다들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에 홀라당 빠져 순수 여행자로 살아온 지 햇수로 27년 차, 직업 여행가로 지내온 지 19년 차다. 그만큼 국내외 많은 곳을 싸돌아다녔다. 개인적으로 동남아시아 쪽을 여행할 때는 태국이나 베트남을 먼저 떠올렸고 공교롭게 일로도 말레이시아와는 연이 닿지 않았다.

평범한 날의 쿠알라룸푸르 일상 풍경

그러다 보니 내 뇌 속에 말레이시아에 대한 지분은 거의 0%. 좋게 얘기하면 선입관 따위 없이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백지' 상태였고, 좀 더 까놓고 얘기하면 그냥 아는 게 없는 '무지' 상태였다. 뇌에 '말레이시아'라는 단어를 입력했더니 가까스로 나온 한 가지 반응은 있었다. "이슬람 국가라 맥줏값이 너무 비싸요!"였다. 두 달 전쯤 말레이시아에 놀러 간 후배 J가 카톡에 남긴 불만이었다. "근데 노을은 정말 최고네요!"라는 흥분 가득한 사진도 함께 남겼더랬다.

말레이시아로 떠나기 며칠 전, 예의상 백지상태의 뇌에 정보를 조금 넣어 주기로 했다. 국가 면적이 약 33만 평방킬로미터로 한국의 3배 이상이고, 인구는 약 3,400만명 수준. 숫자에 지독히도 취약한 인간이라 '우리나라보다 땅은 크고 인구수는 적다' 정도로 정리해 머리에 입력했다. 의무감에 시작한 공부(라고 부르기에는 턱없는 수준의 정보 취합 정도?)였는데 점점 호기심을 자극했다. 말레이시아는 산유국이며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다문화 사회였다. 국교는 이슬람이나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허용하는 개방성과 포용성을 보이는 국가이기도 했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는데, 보통 왕위를 계승한 군주가 평생 재임하는 국가들과는 달리 9개 주의 술탄이 순번제로 5년 임기로 국왕에 취임한다는 재미난 사실도 알게 됐다. 어째 이 나라, 점점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잔상으로 남은 쿠알라룸푸르의 밤

●쿠알라룸푸르는 옳은 선택이었어!

한국인들에게는 '말레이시아=코타키나발루'라는 암묵의 공식이 있지만, 왠지 첫 만남이다 보니 이 나라를 좀 더 제대로 알아 갈 만한 목적지를 원했다. 말레이시아의 현재가 살아 숨 쉬는 쿠알라룸푸르(현지에서는 주로 KL로 줄여 부른다)와 과거의 숨결이 흐르는 페낭(피낭)을 선택했다. 말레이시아를 처음 마주하기에는 꽤 괜찮은 여행지의 합이라 자찬하며.

다양한 문화와 시대를 반영하는 각양각색의 건축물이 쿠알라룸푸르를 장식한다

말레이시아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쿠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 여행의 첫 관문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글로 배운 말레이시아가 명확하게 실체화되는 곳이랄까. 도착 첫날 투어 버스 안, 가이드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중국계였고 운전사는 인도계였으며 말레이시아 관광을 홍보하는 직원은 말레이계였다. 이론으로 본 말레이시아의 민족 구성이 그대로 재현됐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에 말레이시아 전통 음식과 중국 음식, 인도 음식을 모두 섭렵하는 건 기본. 어느 거리에서는 모스크와 마주하고 또 다른 거리에서는 불교 사원이나 힌두교 사원, 대성당을 만날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가 다양한 인종, 문화, 종교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이자, 각자의 특성과 가치를 존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자이크 사회임을 쿠알라룸푸르에 머무는 하루 이틀 새 제대로 인지했다. 이런 다양성은 이 도시를 여행지로 빛나게 하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인종과 문화를 넘어, 세련된 도시미와 원시의 자연미, 오래된 골목과 초현대적인 빌딩 숲, 단아한 주경과 화려한 야경 등 다양한 매력 포인트가 도시를 채운다. 그래서 여행자는 즐겁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봐야 할 Check List!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에 도심 속 은밀한 초록빛 정원, KL 포레스트 에코 파크 올라 쿠알라룸푸르를 눈과 기억에 저장한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s)
지상 88층 규모, 높이 약 452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이다.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이 건물은 한일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 업체가 각각 한 동씩 맡아 건립했는데, 당시 건축계의 한일전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일본보다 한 달 정도 늦게 건설을 시작한 우리가 결국에는 먼저 완공했다는 얘기에 괜히 어깨가 올라간다. 두 건물을 연결하는 41층과 42층 사이의 스카이 브릿지도 우리나라가 만들었다. 86층의 전망대와 스카이 브릿지에서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크리스털처럼 반짝거리는 야경이 압권.

잘란 알로 뒷골목이 쨍한 벽화로 화사해졌다

잘란 알로(Jalan Alor)
낮에는 벽화, 밤에는 야시장이 여행자를 매료한다. 낮에는 알록달록한 벽화가, 밤에는 각양각색의 음식이 주인공이 된다.

왕궁(National Palace)
말레이시아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으로 일반인 출입은 통제돼 먼발치에서 관람 가능하다. 출입문 양쪽에 선 왕궁 경호원들과의 기념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 보자.

국립 모스크(National Mosque)
1965년 건립된 모스크로, 관광객도 입장이 가능하다. 기도 시간에는 입장이 제한되니 미리 시간을 확인할 것.

도심 속 은밀한 초록빛 정원, KL 포레스트 에코 파크

KL 포레스트 에코 파크(KL Forest Eco Park)
도심 속에서 만나는 열대우림. 흔들다리와 산책로를 따라 거닐며 자연을 만끽하기 좋다. 울창한 우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고층 건물 풍광이 이색적이다.

창캇 툰쿠 전망 포인트(Changkat Tunku Lookout Point)
현지인들 사이에 입소문 난 전망 포인트로, 쿠알라룸푸르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담기 좋다. 노을 질 무렵이 베스트 타이밍!

●페낭 일주일 살이를 꿈꾸게 된 이유

쿠알라룸푸르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이면 페낭에 이른다. 쿠알라룸푸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자면 여행 전부터 페낭에 더 끌렸다. '동양의 진주'라는 뻔한 수식어보다는 미식의 천국이자 힙한 카페가 넘쳐난다는 말레이시아항공 기내지의 설명에 마음이 동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페낭 여행의 진수인 조지타운(George Town)이다.

조지타운의 오래된 건축물을 개조한 더 프레스티지 호텔 페낭. 수영장 물빛 너머 바다가 기다린다

조지타운이라는 이름에서 낌새를 챘겠지만, 영국 식민 시절인 18세기 후반에 건설된 도시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던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에 위치한 페낭섬의 대표 무역항으로 성장한 조지타운은 영국, 말레이시아, 중국, 인도 흔적이 어우러져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도시가 겪어 낸 세월과 역사의 결과물에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했다.

조지타운을 여행하는 핵심 키워드로는 건축, 미식, 벽화를 꼽겠다. 여기에 사심 조금 보태 카페 투어도 넣어 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몇 글자가 대변하듯 조지타운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즐비하다. 1950년에 지어졌다는 건물 앞에서 현지 가이드가 "이 정도면 신축"이라며 너스레를 떨 정도다. '소방서가 이렇게 예쁠 일이야'라는 반응이 자연스레 따라붙는 옛 중앙소방서 건물에는 건축 시기를 알리는 '1908'이라는 숫자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그렇다고 조지타운의 건축물이 연식만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여러 문화 요소가 반영된 독특한 건축 양식에 더해 색감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각각 '블루 맨션', '그린 맨션'이라 불리는 청팟제 맨션과 페낭 페라나칸 맨션이 색의 힘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다. 특히 꽃에서 얻은 천연염료로 채색한 블루 맨션은 오묘한 색감 덕에 건축미가 더욱 빛을 발한다.

빛바랜 모습 그대로 조지타운을 지키는 '자전거 탄 아이들' 벽화

이색적인 건축물과 더불어 재미난 벽화들이 발길을 멈춰 세운다. 골목 곳곳의 낡고 허름한 건물 외벽은 예술가의 손길을 만나 멋진 작품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리투아니아 출신 화가 어니스트 자카레비치(Ernest Zacharevic)의 '자전거 탄 아이들'이다. 줄 서서 사진 찍는 인기 포인트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뒷좌석에 탄 꼬마 등을 만졌는지 일부 그림이 닳아 없어졌다. 누나 허리를 꼭 잡고 울먹이는 소년의 표정이 마치 "내 등 좀 그만 만져!"라며 소리치는 듯해 멀찌감치 서서 벽화만 카메라에 담아 본다.

소방서마저 이리도 예쁜 조지타운

이 도시는 어찌된 일인지 거리 어디에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되는 풍경이 있고, 어디에나 기꺼운 마음으로 손님이 되어 주고픈 가게들이 서 있다. 아직 봐야 할 건축물도 벽화도, 먹어야 할 음식도 너무 많은데 조지타운에서의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간다. 미리 저장해 온 힙하다는 카페 '놈 마이크로 로스터리(Norm Micro Roastery)'나 '내로우 매로우(Narrow Marrow)', '앨리(The Alley)'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못 마셨거늘, 돌아갈 시간이다. 다음에는 무조건 페낭에서 일주일 살기다!

▶페낭에서 봐야 할 Check List!

오랜 시간 잊히지 않을 푸른 빛을 간직한 청팟제 맨션

청팟제 맨션(Cheong Fatt Tze's Mansion)
'중국의 록펠러'라 불리던 거상 청팟제(張弼士)가 19세기 후반에 건축했으며, 건물의 특별한 분위기 덕에 <인도차이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같은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인 인디고(Indigo)를 비롯해 호텔, 바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가이드 투어나 셀프 오디오 투어를 통한 내부 관람도 가능하다.

옛 페낭으로의 특별한 초대, 페라나칸 맨션

페낭 페라나칸 맨션(Pinang Peranakan Mansion)
페라나칸은 말레이 반도나 인도네시아 군도로 이주한 중국인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 태어난 후손을 일컫는다. 19세기 중국인 대부호 청켕퀴(鄭景貴)의 주택이자 사무실로 사용됐던 곳으로, 지금은 페라나칸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클랜 제티(Clan Jetty)
19세기 후반 중국인 이민자들이 부두에 조성한 수상 가옥 집성촌을 통틀어 일컫는다. 탄, 림, 여, 리 등 여러 제티(부두)가 남았는데, 츄 제티(Chew Jetty)가 가장 유명하다.

더 톱 페낭(The Top Penang)
페낭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아쿠아리움, 각종 놀이기구, 전망대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최고의 스폿은 68층 스카이워크. 조지타운을 가장 짜릿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포인트다.

페낭대교(Penang Bridge)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에 이어 또 한 번 한국인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곳. 말레이시아 본토와 페낭섬을 연결하는 총연장 13.5km의 다리로, 현대건설의 작품이다. 원래 프랑스 업체가 최저 입찰가로 낙찰됐으나, 2위였던 현대건설이 공사 기간 단축을 제안하며 극적으로 사업을 따내 성공적으로 완수해 냈다는 뒷이야기가 한국인들에게는 흥미로울 수밖에.

모 텡 피오 노냐 코아이(Moh Teng Pheow Nonya Koay)
노냐(nonya)는 페라나칸 중 여성을 일컫는 말로, 노냐 요리(페라나칸 요리)는 말레이시아 음식의 한 축을 이룬다. 이곳은 페낭의 인기 노냐 요리 전문점으로, 2023년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됐다.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간식류인 쿠이(Kuih)가 대표 메뉴다.

글·사진 김수진 에디터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말레이시아관광청, 말레이시아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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