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품·맥주·공공요금 줄줄이 인상 대기… 고민 깊은 한은 [고물가 비상]

이희경 2023. 10. 6.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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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이달부터 물가 다시 하락” 전망
수확철 농산물 가격 안정 기대하지만
고유가·원유값 인상 등 상승 요인 많아
한·미 금리差 추가 확대 가능성도 악재
전문가들 “기준금리 인상 필요한 시점”
물가상승률 外 다양한 요소 고려 필요
당장 인상 결정 내리기는 쉽지 않을 듯

안정세를 찾는 것처럼 보였던 물가가 다시 들썩이면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앞둔 한국은행의 고심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달부터 물가 상승세가 다시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 등 대내외 변수도 적지 않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긴축 기조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돼 금리 차 확대도 고려해야 한다.

5일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에도 기저효과가 일부 작용한 가운데 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전월에 이어 오르면서 8월 전망 경로를 다소 웃도는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만 해도 9월 물가가 8월 물가상승률(3.4%)과 비슷하거나 다소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예상보다 상승 폭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원유가격이 오르며 오는 6일부터 출고가에 인상분이 반영돼 유제품 가격이 본격적인 인상된다. 5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우유가 진열되어 있다. 뉴시스
정부와 한은은 일단 이달부터 물가가 다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에도 수확기를 맞아 농산물 가격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점이 근거다. 김 부총재보는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월부터 다시 둔화 흐름을 이어 가면서 연말에는 3% 내외 수준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가 불안 요인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우선 주요 산유국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자발적 감산 연장 조치에 따른 고유가가 지속적으로 물가를 흔드는 복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통상 국제유가는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류 가격에 반영되는데 9월 중하순에도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를 넘는 등 고공행진했다.

최근 식음료 가격이 줄줄이 오르거나 인상이 예고되는 등 가공식품 가격도 변수다. 특히 원유 가격이 리터(ℓ)당 88원(8.8%) 인상되면서 서울우유, 매일우유, 남양유업 등은 우유 가격을 올렸다. 우유를 원료로 쓰는 아이스크림 가격도 오르고 있다. 빙그레와 해태아이스크림은 6일부터 아이스크림 제품 가격을 채널별로 순차적으로 올릴 예정이다. 여기에 맥주 가격까지 인상이 예고되면서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오비맥주는 11일부터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할 예정이다.
원/달러 환율이 급락 마감한 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일보다 13.0원 내린 1,350.5원에 장을 마쳤다. 연합뉴스
미국의 긴축 장기화 우려에 따른 고환율 역시 물가에는 악재다. 달러 강세에 따른 원화 가치의 하락은 수입 물가를 높여 업계의 생산비 부담을 키우게 된다. 국내 기업들이 원·부자재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상황에서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물가가 들썩일 수밖에 없다.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 여부도 올해 하반기 물가에 주요 변수 중 하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소비자물가 동향: 리스크 요인과 전망의 불안정성’ 보고서에서 “한전과 가스공사가 누적된 요금 인상 요인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어 추가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에 올 하반기 한 차례 더 전기요금 인상 여지가 있어 물가 상승 여력은 남아 있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두고 한은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은은 오는 19일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정한다.

기준금리 결정에는 물가상승률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해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금통위에서는 인상 가능성을 열어 놓는(매파적) 동결을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수출 부진 등의 경기침체가 한은의 금리 인상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배경이다. 9월 무역수지는 반도체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부의 ‘상저하고’(상반기 저성장, 하반기 고성장)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수출이 회복세를 띠는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상은 원화 강세를 불러와 수출 경쟁력을 감소시킨다.
5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하며 4월(3.7%)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뉴스1
반면 고물가, 원·달러 환율 급등 등 금리 인상 요인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연내 추가 금리 인상 여부도 관건이다. 시장에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1월이나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2%포인트로 사상 최대인 한·미 금리 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 금리 차가 확대되면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고(원화 약세)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전문가들은 역대 가장 큰 수준으로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와 물가 상승 압력 등을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물가 상승 압력과 미국의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한 금리 상승세 그리고 우리나라 통화가치의 하락이 지속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 상승 압력을 계속 덜어 가고, 미국과의 금리 역전에 따른 부담도 줄여 가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세종=이희경 기자, 이병훈·이강진·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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