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콩고기가 아니다…대체육의 진화, 어디까지 갈까[창간 기획]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유발하는 육류 대신 주목받는 ‘지속 가능 식품’…동물 희생 없는 무혈청 배양액 개발로 대량생산 ‘청신호’
글로벌 시장 7조원대 규모로 4년 만에 3배 성장, 국내 기업들도 집중 투자…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소 없는 소고기’가 식탁에 오를 날 머지않았다
#직사각형 모양 캔을 따면 불그스름한 햄이 모습을 드러낸다. 먹기 좋은 두께로 썰어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리니 지글지글 소리 내며 익는다. 냄새가 제법 고소하다. 냉동 스테이크와 너깃을 굽고, 살코기로 채워진 참치캔도 꺼낸다. 이 모든 것에 ‘진짜 고기’는 단 1g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형마트 온라인몰에서 당일배송으로 손쉽게 구한 대체육 제품들이다.
#롯데리아에선 100% 식물성 패티를 넣은 ‘리아 미라클버거’가 2020년 판매 시작 이후 4년째 살아남았다. 리뉴얼된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전년 동기보다 20% 증가한 45만개가 팔렸다.
여러 프랜차이즈가 식물성 요리를 도입했다가도 금세 메뉴에서 뺀 점에 비춰보면 의미 있는 기록이다. 7일에는 지리산 대화엄사가 생명존중사상을 담은 식물성 버거 ‘화엄사 버거’를 출시한다. ‘세계 최초 사찰 비건버거’ 타이틀을 갖게 됐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대체육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대체육 시장은 아직 저변을 넓혀가는 단계이지만, 전 지구적 화두인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떠오른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 없는 소고기’가 식탁에 오를 날이 머지않았다.
옛날 그 콩고기가 아닙니다
한국은 저출생이 문제라지만, 세계 인구는 늘고 있다. 현재 80억명에서 10여년 뒤 90억명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가 증가하면 고기 수요도 많아진다. 하지만 물, 토지 등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존 생산 방식대로는 수요를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체육이 미래산업으로 꼽히는 이유다.
한국푸드테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 교수는 5일 “단백질 대체재가 꼭 고기 형태일 필요는 없다”면서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이 고기이고, 하루아침에 식습관을 바꾸긴 어렵기 때문에 대안으로서 유사성을 띠는 대체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대체육은 콩, 밀 등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식물성 제품이다. 과거에도 콩고기로 불리는 대체육이 존재했다. 먹어본 사람이라면 퍽퍽한 식감과 특유의 냄새를 떠올릴 것이다. ‘지속 가능한 식생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대체육 개발에 달려든 결과 수준이 전보다 높아졌다.
풀무원, CJ제일제당, 신세계푸드, 농심 등 웬만한 식품기업은 대체육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다. 기업들은 외식 매장까지 운영하면서 대체육 소비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지구인컴퍼니, 알티스트 등 스타트업의 기술력도 만만치 않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대체육 시장은 2018년 75억원에서 2022년 212억원으로 4년 만에 약 3배로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7조원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육식을 하는 소비자들이 선뜻 고기 대신 시중 대체육 제품을 선택할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쫄깃한 식감과 감칠맛이 실제 고기와 다름없는 느낌을 주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향부터 거부감이 드는 것도 있다. ‘맛의 개선’은 끝없는 숙제인 셈이다.
도축 없이 고기를 먹는다고?
대체육은 식물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동물 세포를 배양해 고기 형태로 만든 배양육이 기존 육류와 가장 유사한 대체육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양육은 동물의 특정 부위에서 세포를 추출해 배양기에서 근육 또는 지방조직으로 키워내는 과정을 거친다. 성장을 마친 조직을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면 고기가 완성된다.
지금까지 정식 판매 승인을 한 국가는 싱가포르와 미국뿐이다. 싱가포르는 2020년 미국 굿미트가 만든 닭고기 배양육 판매를 승인했다. 지난 6월에는 미국 농무부가 업사이즈푸드와 굿미트가 닭고기 배양육을 판매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두 국가 모두 일부 레스토랑에서 배양육을 이용한 메뉴를 선보이는 단계다. 반면 이탈리아에선 국익과 식품 유산, 소비자 건강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배양육 생산·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등 국가마다 온도 차가 있다.
국내에서도 티센바이오팜, 씨위드, 셀미트, 스페이스에프, 다나그린 등 스타트업들이 배양육 개발에 한창이다. 식품기업 등도 국내외 스타트업들과 협력하며 배양육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닭고기부터 생선까지 다양하게 개발이 진행 중이다.
덩어리 형태 배양육을 개발 중인 티센바이오팜의 라연주 최고전략총괄이사(CSO)는 “지속 가능한 식품 시스템을 만드는 데 기여하면서 소비자도 맛있고 안전한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라 이사는 “한국은 리더 그룹인 미국에 비해 3~4년 늦게 시작했지만, 후발주자들이 그 기간만큼 뒤처져 있다고 보긴 어렵다”며 “선두주자들이 무얼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배양육을 정식으로 맛볼 수 있기까진 몇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식물성 대체육과 달리 기존에 없었던 신소재 식품인 만큼 식품당국의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도 나오지 않은 상태라 국내 업체들은 우선 미국 시장 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라 이사는 “배양육은 인허가 문제도 있고 기존 식품공장에서 바로 만들 수 없다. 제도권에서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 선보이는 데는 최소 5년은 더 걸릴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5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세포 배양 기술로 얻은 식품 원료를 ‘한시적 식품 원료 인정 대상’에 포함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앞으로 인정 기준 고시 개정을 통해 식품 원료 인정 신청에 필요한 제출자료, 범위 등이 제시될 예정”이라며 “연내 행정예고를 목표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K대체육이 세계로 가려면
“파는 것은 많이 파는 것과 다르다.” 굿미트 공동 창업자 조시 테트릭은 지난 1월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당국의 승인은 한 가지 장애물에 불과할 뿐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키우는 건 다른 문제라는 얘기다.
아직은 배양육 생산 비용이 기존 육류보다 훨씬 많이 들고 생산 규모도 작다. 가장 큰 부담 중 하나는 세포를 성장시키는 ‘먹이’인 배양액이다. 기존에는 임신한 소를 도축한 뒤 태아의 혈액을 뽑아 채취한 소태아 혈청에 의존해왔다.
소태아 혈청은 ℓ당 100만원이 넘는 고가인 데다 윤리적 문제도 따른다. 환경보호와 동물복지를 위한 대체육 생산 과정에서 동물이 희생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행히 국내외 업체들이 소태아 혈청을 사용하지 않는 무혈청 배양액을 개발해내면서 비용 절감과 대량생산을 향한 청신호가 켜졌다.
무엇보다 여러 난관을 넘어 시장에 제품을 내놨다고 해도 소비자들이 사 먹어야 살아남는다. 테트릭은 “주저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회사는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먹어도 안전한지 최대한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육을 포함한 국내 푸드테크 산업을 미래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기원 교수는 “국내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농식품 산업은 내부 경쟁 중심이고 세계화가 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자본과 기술, 인재가 필요하다”며 “정부 주도가 아니라 스타트업, 대학, 대기업 등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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