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펑크’에 허리띠 졸라맨 정부·‘더 써야 한다’는 야당…경제학자들 생각은
“내년 세수 전망 더 어두워… 재정 긴축해야”
vs “건전재정 기조에 감세 정책은 역설적”
“저소득층·R&D 예산 늘려야” 주장도
올해 59조원의 세수 결손이 예고된 상황에서 내년 예산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으로 편성했다. 반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예산을 6%까지 증액해야 한다며 정부가 내놓은 2.8% 증가보다 대폭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경제학자 사이에서는 내년 세수 상황을 고려해 재정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내년 법인세, 양도소득세 등 세수가 더 줄어들면서 세수 상황이 올해보다 더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감세 정책에 문제가 있다며 세원을 발굴해 저소득층과 연구개발(R&D) 예산 등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 내년 예산안 두고 정부안에 정면 반박한 민주당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세금 수입은 지난해 예산안 편성 당시 전망치보다 59조1000억원 부족할 전망이다. 세수 추계 오차율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3년 연속 수십조원의 세수 예측이 빗나가면서 경기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세수 부족 사태 속에서 내년 예산안은 총지출 656조9000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올해와 비교해 2.8% 늘어난 수준이다. 올해 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5.1%였다. 문재인 정부 당시 총지출 증가율이 7~9%였던 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긴축하는 이유는 올해 59조원 규모의 세수 펑크 상황에서 내년 세수 상황도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박광온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18일 국회 연설에서 “내년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을 6% 이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와 국민의힘이 거부한다면, 민주당은 정부안을 정상적으로 심사할 수 없다”며 “모든 야당과 공동으로 새 예산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서 내년도 예산을 두고 부딪힐 전망이다.
◇ 내년 세수는 더 ‘먹구름’… “최대한 지출 누수 막아야”
경제학자들은 크게 내년 예산안을 더 긴축해야 한다는 의견과 예산을 더 풀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내년 세수 상황이 올해보다 더 안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되면서 내년 법인세 세수는 올해보다 29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은 세수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최대한 지출 누수를 막아 재정 여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세수 예측도 크게 어긋날 가능성이 크다”면서 “고금리가 지속돼 자산 가격 하락으로 양도소득세가 감소하고, 법인세도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류세 인하를 정상화한다는 전제하에 추정한 세수인데 아직도 유류세 인하 연장을 검토하고 있어 내년 세수 결손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정부가 제시한 예산안 증가율보다 더 긴축재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92조원에 달할 것을 따져보면 내년 예산 규모도 긴축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고금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재정 정책은 금융과 함께 긴축 공조를 이어가야 한다”라고 했다.
내년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올해(55조2000억원)보다 33조8000억원 늘어난 92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 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것으로 실질적인 나라 살림 상태를 보여준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올해 2.6%에서 내년 3.9%로 1.3%포인트 높아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을 따지면 정부가 제시한 ‘재정 준칙 한도’(3.0%)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 “건전 재정 기조에 ‘감세 정책’은 모순적” 지적도
반면, 경기 둔화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시기에 지출을 줄이면 불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를 이어가면서 감세 정책을 펼치는 것은 앞뒤가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선 정부가 돈을 풀어 경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올해 세수에서 대폭 줄어든 법인세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부터 확인해 세수를 올릴 수 있는 여건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더 걷은 세금을 저소득층에 집중 지원하는 데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저소득층은 저축보다 소비하는 비율이 높은 한계소비성향이 크다”라며 “똑같은 돈을 경기 부양 측면에서 쓰려면 저소득층 지원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데 예산을 삭감하면 국민이 겪는 고통이 커질 수 있다”라며 “내년 경제도 고금리 상황이 지속될 전망인 만큼 재정 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해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세금이 수십조원 덜 걷히면서 세수 기반이 무너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비효율적인 감세 조치가 문제라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법인세를 깎아주는 것은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에 대한 세금을 빼주는 역할만 할 뿐”이라며 “세수가 있어야 국가 재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 혁신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정부는 내년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 삭감한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우 교수는 “R&D 예산을 줄이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늘린 것은 미래 성장 동력을 꺼트리는 일”이라며 “한국경제의 큰 문제는 생산성 저하인데, 기술 관련 혁신이 일어나도록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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