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개최 ‘작은 거인’ 김수철 “40년 음악했지만 빌딩 없어…국악과 맞바꿨다”[SS인터뷰]

조은별 2023. 10.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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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수철이 3일 서울 명동 스포츠서울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수철은 데뷔 45주년을 맞아 오는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김수철과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통해 지휘자로 무대에 오른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40년 넘게 음악했지만 빌딩 한 채가 없어요. 국악과 맞바꿨거든요.”

국악과 빌딩을 맞바꾼 남자, ‘작은 거인’ 김수철이 데뷔 45년만에 꿈을 이뤘다. 그는 오는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국악 중심의 공연을 펼친다. 45년 간 27장의 국악 앨범을 내며 전 재산을 국악에 쏟아 부은 노력의 집대성이다.

공연에서는 70만 장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영화 ‘서편제’(1993) OST를 비롯, 1988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선보인 ‘기타 산조’ 등 김수철이 그간 발표했던 국악음악을 처음으로 무대에서 들려준다. 주문제작한 서양타악기만 20대, 국악타악기만 40대에 이르는 전세계 최초 동서양 음악 랑데부다.

“전성기 시절 강남 빌딩이 20억원 미만이었어요. 아마 그때 제 음악을 사겠다는 재벌에게 인접권을 팔았다면 빌딩 몇 채는 샀겠죠. 하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문화는 자존심인데 ‘돈돈돈’ 하기에 앞서 자존심을 지켜야죠.”

돈보다 자존심을 중시하는 김수철의 면면은 그의 국악 1집과 관련된 에피소드만 들어도 알 수 있다. 1983년 ‘못다 핀 꽃 한송이’를 발표한 뒤 당대 최고의 가수로 올라선 김수철은 1987년 국악 1집 ‘영의 세계’를 야심차게 발표했지만 1억여원의 빚만 졌다. 결국 2년 뒤 발표한 ‘정신차려’로 그 빚을 모두 갚았다.

‘못다 핀 꽃 한송이’,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날아라 슈퍼보드’ OST 등 숱한 히트곡을 발표했지만 발표하는 족족 국악 앨범 제작에 투자한 그는 “가요로 돈을 벌어 국악 앨범만 제작하면 다 빚이 된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수 김수철이 3일 서울 명동 스포츠서울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15년간 준비해온 이번 공연 역시 기업후원을 받지 못해 김수철이 자비로 제작비를 충당한다. 처음에는 무료공연으로 준비했지만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유료로 변경하고 환경미화원, 소방관, 집배원들 등을 무료 초청한다. 김수철은 “공연 뒤 또 벌어서 갚아야지”라며 배시시 웃었다.

그가 이렇게 ‘국악 외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미래 한국을 이끌 젊은이들에게 긍지를 가질 문화콘테츠를 남기기 위함이다. 과거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에 태평소 연주를 삽입하고 방탄소년단의 ‘아이돌’, 슈가의 ‘대취타’ 등 일부 K팝 그룹들이 국악을 차용한 음악을 연이어 발표했지만 국악의 대중화가 이뤄졌다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게 김수철의 설명이다.

‘범이 내려온다’를 발표한 이날치도 일부 멤버 교체를 겪었고 숱한 국악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트로트로 전향하는 등 한국대중음악계에서 국악이 변방의 음악으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결국 가요계 대선배인 자신이 앞장서 다음 세대에게 국악을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노구의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오랜 동료인 가수 양희은을 비롯, 김덕수 사물놀이패, 후배 가수 성시경, 백지영, 이적, 화사 등이 김수철의 뜻에 공감해 출연료 없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김수철의 히트곡 ‘별리’ ‘못다 핀 꽃 한 송이’ ‘내일’을 들려준다.

가수 김수철이 3일 서울 명동 스포츠서울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김수철은 국악 투자 및 후원에 인색한 국내 대기업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콘텐츠를 지녔지만 정작 자국문화에는 관심이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문화는 시장논리처럼 얼마를 투자해서 남기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만난 기업들이 ‘국악을 하면 (홍보)효과가 있나요?’라고 물어보곤 하는데 선진국은 문화를 돈으로 계산 안해요. 멋을 아는 기업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죠. 결국 제가 젊은이들을 국악으로 안내하는 브릿지 역할을 자처했죠.”

지난 45년간 발표한 음악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도 국악과 관련된 곡들이 대부분이다. 김수철은 “‘못다 핀 꽃 한송이’는 나를 대중에게 알리고 국악 앨범을 제작할 수 있게 한 곡이다. 영화 ‘서편제’는 13년간 국악을 공부하며 꾸준히 망하다 처음으로 성공한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88서울올림픽 전야제 음악이나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음악을 맡으며 애국심이 고취됐다고 덧붙였다.

김수철은 꿈에 그리던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을 마친 뒤 홍대 앞으로 달려갈 예정이다. 올 겨울 무렵, MZ세대를 위한 국악 공연을 준비 중이다.

“지난 2월, 크라잉넛 한경록의 생일인 ‘경록절’에 출연했는데 MZ세대들이 의외로 저를 좋아해주셨어요. ‘날아라 슈퍼보드’ OST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여전히 대학가에서 ‘젊은 그대’가 불리며 ‘정신차려’의 해학적인 가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국악 공연을 접할 기회가 없는 MZ들을 위한 공연을 통해 국악의 매력을 널리 알릴 예정입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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