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이런 세상을 사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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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가 사망했다.
나는 그가 커튼 친 방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는 개인의 사생활이 다른 사람의 시선 아래 굴러다니는 것을 인간이 주체에서 객체로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생활의 커튼을 함부로 열어젖히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의 책을 읽은 것은 오래전 일인데도 쿤데라라면 요즘 상황을 어떻게 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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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l 민음사(2011)
2023년 7월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가 사망했다. 나는 그가 커튼 친 방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는 개인의 사생활이 다른 사람의 시선 아래 굴러다니는 것을 인간이 주체에서 객체로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생활의 커튼을 함부로 열어젖히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을 유포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그것에 대해서도 이미 한마디 했다. “아, 그리운 수치(심)여!” 그는 수줍음과 수치심이 인간에게서 멀리 떠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그때도 개인은 한 개인으로 머물 수 있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을 읽은 것은 오래전 일인데도 쿤데라라면 요즘 상황을 어떻게 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를테면 쿤데라는 소설의 역할은 인간 실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고 우리 실존은 어떤 단어 위에 구축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시절에 우리 실존은 ‘코로나’라는 단어 위에 구축되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했고 악수를 하지 않고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는 정신적으로는 히스테리, 강박, 우울 같은 흔적을 남겼다. 쿤데라가 바이러스, 육체, 질병, 죽음이라는 이 거대한 테마로 인간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탐구하려고 했을지 궁금하다. 모든 인간적인 것을 통계수치로 바꿔버리는 것? 관료주의? 삶도 죽음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맹목적 생존 본능? 기술적 속도전? 어디로도 이끌지 못하는 희극적인 이념들? 이 모두 쿤데라가 포착해 온 인간의 실존 가능성이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쿤데라의 작품은 ‘농담’이다. 농담은 루드비크라는 남자가 몇 년 만에 고향에 갔다가 옛 애인 루치에를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루드비크는 대학 때 사랑하게 된 여자 친구에게 농담 한마디 잘못했다가 당과 학교에서 쫓겨나 탄광 도시에서 일하게 된다. 공부, 당, 우정, 일, 사랑 모두 끝났다. 한마디로 의미 있는 인생행로 전체가 끝난 것이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딱 하나, 시간뿐이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루치에다. 루치에가 그의 눈길을 끈 것은 그녀가 눈에 띄게 느리게 움직여서였다. 그녀 또한 가진 것은 딱 하나 시간뿐이었던 것이다.
소설은 루치에와 한 번만이라도 사랑을 나누어 보려는 모든 노력이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허사로 끝나버리고 세월이 흘러 대학 때 그의 추방을 선동했던 사람에게 역시 비참하고 우스꽝스럽게 복수를 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농담’의 마지막 문장이 내가 열심히 생각하는 인간 실존 가능성이다.
“거기에서는 슬픔이 가볍지 않고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고 사랑이 우습지 않으며 증오심이 맥없지 않고 사람들을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행복은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절망은 다뉴브 강으로 뛰어들게 만들며 그곳에서는 그러니까 사랑이 사랑으로, 고통이 고통으로 머물고 아직 가치들이 유린되지 않았다.”
쿤데라가 ‘농담’에서 발견한 인간 실존 가능성은 우리가 가치를 유린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슬픔은 슬픔이 아니고 기쁨은 기쁨이 아니고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책임은 책임이 아니고 말들은 빛을 잃고 공허해지고 우리는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그 말들에 우리가 원래 부여하려던 의미가 있었다는 자체를 잊었다. 나에게는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다.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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