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아름답고 부서진 야생의 소리를 찾아서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희생되는 소리 다양성
‘윤리의 뿌리’이자 정보인 야생의 소리 되찾아야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경이로운 소리들, 진화의 창조성, 감각의 멸종 위기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l 에이도스 l 3만3000원
45억 년 역사를 지닌 지구 표면에 처음으로 동물의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2억7000만 년 전이었다. 프랑스 중남부 고원 지역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고대 귀뚜라미 페르모스트리둘루스는 바람 소리와 물소리, 천둥소리 말고는 고요하기만 했던 육상 세계에 생명의 소리의 출현을 알렸다. 꽃식물이 번성하면서 곤충의 다양성이 급속히 증가했고, “이 번성은 지구의 소리를 바꿨다.” 그러므로 여치와 메뚜기, 매미 등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곤충에 의해 소리로 전환된 식물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리를 매개로 식물과 곤충, 인간이 연결되는 것이다.
숲에서 우주를 보고 나무의 노래를 들었던 과학자가 이번에는 야생의 소리를 찾아 나섰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와 ‘나무의 노래’ 두 책으로 한국에도 많은 독자를 지닌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신작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이야기다. 원제가 ‘야생의 부서진 소리들’(Sounds Wild and Broken)인 이 책에서 해스컬은 소리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의 연결 및 관계에 관한 통찰을 펼친다. “모든 생명은 연결과 관계로 이루어졌”는데, 야생의 부서진 소리들은 인류가 직면한 감각의 위기를 대표한다는 것, “윤리의 뿌리가 되고 방향을 알려주는 정보와 감각”으로서 야생의 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듣기의 출발은 세포막의 작고 꼬불꼬불한 털 섬모로 거슬러 올라간다. 섬모는 “세포 밖의 움직임을 세포 내부의 화학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생명이 음파를 지각하는 토대가 되었다.” 인간의 속귀에 있는 1만5000개의 소리 감지 세포 하나하나에도 작은 털 다발이 난 섬모가 왕관처럼 덮여 있다. 인간의 듣기에도 섬모가 동원되는 것이다. 인간의 귓속 고리관은 체액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것은 “물속에 사는 먼 친척과의 (…) 감각 경험의 동일성”을 알려준다. “공기 중에서 말하고 육지에서 걷고 숨 쉬면서도 물이 담긴 귓속 고리관에서 떨리는 털세포를 통해 바다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물고기와 닮았다.
독일 남부의 빙기(氷期) 동굴에서는 4만 년 전 새 뼈와 매머드 엄니로 만든 피리가 발견되었다. 악기의 탄생이었다. 악기의 소재와 제작 방식, 연주법은 자연에 기반한 것이었고, 음악은 인간이 바깥 세계와 맺는 관계를 보여주었다. 음악은 “여러 형태의 인류 문화뿐 아니라 바위, 흙, 살아 있는 존재의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성질을 나타낸다.” 음악적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우리는 생명 공동체의 그물망 속으로 다시 엮여 들어간다.
음악을 비롯한 미적 경험은 우리가 더 큰 생명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지만, 인간의 필요와 욕구는 야생의 소리를 부수는 쪽으로 발현되어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조류 개체수는 3분의 1이 감소했다. 전 세계 모든 앵무종의 절반이 감소하고 있다. 식물종 역시 세계적으로 적어도 20퍼센트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해양 생물종 또한 적어도 4분의 1이 멸종 위험에 직면했다. 상업적 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 무분별하게 행해진 고래 사냥 때문에 남극대왕고래 같은 일부 개체군은 과거에 비해 100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9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포경 금지 덕분에 개체수는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 세계 바다의 소음 공해는 고래를 비롯한 바다 생물들에게 또 다른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대양을 오가는 유조선과 화물선, 어선과 여객선이 내뿜는 엔진 소음, 퇴적층 아래 묻힌 석유와 가스를 찾느라 압축 공기 거품을 물속에 발사하는 에어건, 군사용 및 어업용 수중음향탐지기는 고래를 놀래고 더 나아가 내출혈을 일으켜 목숨을 앗아 가기도 한다. 고래와 돌고래, 물범을 비롯한 150여 종의 해양 포유류를 최근 조사했더니 만성적인 소음은 “식사량을 감소시키고 반향정위를 차단하고 이동 시간을 늘리고 휴식을 줄이고 잠수 리듬을 변화시키고 에너지 비축량을 고갈시켰다.”
소음 공해의 피해자가 해양 포유류만은 아니다. 소음 피해에 관한 연구가 비교적 잘돼 있는 유럽의 경우에 질병과 조기 사망의 환경 요인으로서 소음이 미립자 오염 물질에 이어 두 번째이며, 연간 1만2000건의 조기 사망과 4만8000건의 심장병 신규 발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음은 인지 발달을 저해하여 아동에게 특히 큰 피해를 입힌다. 학교에서 비행기, 차량, 기차 소음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집중력, 기억력, 독해력, 시험 성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소음 피해가 인종, 계급, 성별로 불평등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미국 뉴욕에서 동네를 통과하는 고속도로는 “소수 민족과 저소득층 거주 지역을 파괴하고 조각내어 많은 사람들을 떠나게 하고 남은 사람들에게는 소음과 대기 오염이 증가되도록 의도적으로 노선이 짜여 있다.”
야생의 소리가 부서지고 소리 다양성이 줄어드는 사태에 맞서, 자연 세계와의 청각적 연결을 되살리려는 시도도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무선 헤드폰을 쓴 채 강기슭을 따라 걸으며 수중청음기에 잡힌 파도와 수중 생물들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 식물원을 산책하며 녹음된 새와 곤충 소리, 작은 나무 ‘로봇’ 악기 소리와 합창단의 노래를 장소 자체의 소리와 버무려서 듣는 연주회 , 그리고 일본 환경성이 선정한 ‘일본 음풍경 100선’ 사업 등은 그 몇몇 사례다. 그런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서식처 파괴와 인공적 소음이 전 세계에서 소리의 다양성을 지우고” 그 때문에 인간이 “생명 공동체의 감각적이고 다층적인 관계로부터 점점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때문에 지은이는 그 자신 소리를 빼앗긴 야생의 생명이 되어 이렇게 외친다.
“소리의 폭력에 잠긴 나는 달갑지 않은 진동, 낯선 에너지에 밤낮으로 온몸이 후들거리는 고래다. (…) 나는 수백만 년 걸려 진화한 음성 다양성을 빼앗긴 숲이다. (…) 나는 야생의 부서진 소리꾼 검은지빠귀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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