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한겨레 2023. 10. 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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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나무 아래서 책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 기억나지 않네요, 사과가 아주 작을 때부터 읽기를 시작했는데, 점점 책 종이가 거울처럼 투명해져서 작은 사과알들을 책을 읽으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인들이 추린 허수경 시선집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문학과지성사)에서.

김리윤·김소형·김연덕·서윤후·조해주·최지은이 이 시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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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시인의 마을]
‘이병학 기자의 완행버스 여행’ 봉화편에서 소개한 봉화의 사과나무밭. 한겨레 자료사진

 사과나무 아래서 책을 읽었습니다, 책 제목……, 기억나지 않네요, 사과가 아주 작을 때부터 읽기를 시작했는데, 점점 책 종이가 거울처럼 투명해져서 작은 사과알들을 책을 읽으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점점 책 종이가 물렁해져서 책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던 사과알들이 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활자도 사과알을 따라 책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책은 물렁해졌고 물처럼 흐르려고 했어요, 물처럼 흐르는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요, 사과알이 흐르는 책을 여름 내내 읽고 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사과알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 나무가 책의 물 회오리로 들어왔습니다, 집과 새와 구름이 들어왔습니다, 해가 그리고 내 위의 하늘조각도……, 책은 무거워지고 더 거세게 흐르고, 여름 내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과나무도 구름도 해도 하늘조각도 사라지는 자리에서

젊은 시인들이 추린 허수경 시선집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문학과지성사)에서. 김리윤·김소형·김연덕·서윤후·조해주·최지은이 이 시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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