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평등 평화의 한반도 공동체를 향한 이이효재의 꿈
평등·평화 공동체로의 여정
인터뷰로 쓴 이이효재 자서전
강인순‧젠더교육플랫폼효재 기획 l 한울 l 2만9000원
제1세대 여성학자 이이효재(1924~2020)의 자서전 ‘평등·평화 공동체로의 여정’이 고인의 3주기를 기념해 나왔다.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해 진행한 인터뷰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삼고 고인이 생전에 했던 여러 인터뷰 내용을 더해 엮은 이이효재 인생 이야기다. 고인을 가까이서 모셨던 제자 강인순·지은희와 젠더교육플랫폼효재가 엮은이로 참여했다. 젠더교육플랫폼효재는 고인이 1992년 창립한 한국여성사회교육원의 후신이다. 자서전에는 1924년 마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의 엄혹한 시절을 거쳐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한 100년 가까운 삶이 담겼다.
해방 직후 이화여전(이화여대 전신)에 입학한 이이효재는 미군정에서 일하던 앨라배마대학 교수의 도움으로 1947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10년 동안 미국에서 사회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고 1957년 귀국해 이화여대 교수가 됐다. 당시 미국의 주류 사회학은 구조기능주의였는데, 이이효재는 미국에서 배운 사회학 이론이 남북이 분단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을 실감했다. 가부장적 가족구조에서 여성이 겪는 한과 고통,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 반공전체주의 사회가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찍은 이들의 고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고유한 문제에 대한 이이효재의 학문적 고민은 ‘분단된 사회에 대한 인식이 없이 한국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이런 통찰을 준 결정적 계기가 1974년 미국 피스크대학 교환교수 시절 겪은 ‘흑인 해방 사회학 운동’이었음을 이 자서전은 알려준다. 당시 흑인 사회학 교수들은 미국의 주류 사회학을 ‘백인 사회학’으로 규정하고 거부했다. 이이효재는 이 시기에 흑인 사회학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한국 사회를 설명할 독자적인 사회학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이 경험과 함께 1975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의 경험도 이이효재의 생각이 바뀌는 데 자극이 됐다. 그 대회에서 이이효재는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 아니냐?’는 물음을 받았다. 이 대회에 남북 여성들이 모두 참가했지만, 박정희 정권의 대결 정책으로 남북 간 불신과 적대감이 극에 이르러 북쪽 여성들과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서글픔도 겪었다.
이런 경험을 안고 1970년대 후반에 쓴 것이 ‘분단시대의 사회학’이라는 에세이였다. “글을 쓰는 데 1년이 걸렸다. 쓰다가 끙끙 앓고, 쓰다가 끙끙 앓으면서 내 몸과 감정의 모든 것이 솟구쳤다.” 분단 현실에 대한 인식이 날카로워지면서 여성해방에 대한 문제의식도 깊어지고 넓어졌다. 이이효재는 1970년대에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관여하면서 한국적 여성해방론을 모색했고 이화여대에 처음으로 여성학을 개설했다. 여성학의 씨앗이 한국 사회에 처음 뿌려졌다.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눈을 뜬 계기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이끌던 여성 목사 조화순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과의 만남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조화순 목사를 만나 여성 노동 문제를 알게 됐고, 이소선 여사와 접촉하며 그 시절 노동자계급의 문제와 노동운동이 어렵게 태동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됐다.”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대학에서 해직됐다가 4년 뒤 복직하는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1년 처음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인 활동은 이이효재 삶의 후반기에 가장 중요한 일로 꼽을 만하다. 이이효재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공동대표가 돼 일분군 성노예 문제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또 이 시기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공통 과제로 삼아 남북 여성들이 함께하는 여성‧평화‧통일 운동의 선두에 섰다. 이이효재는 남쪽 여성 대표로 판문점을 통과해 평양과 서울을 여러 차례 오갔다. 여성이 해방된 평화로운 한반도 공동체 만들기가 이이효재의 일생을 관통하는 꿈이었음을 이 자서전은 알려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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