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계 시험해보고 싶어 도전”…90세 최고령 합격으로 노익장 과시

이상희 2023. 10.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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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에 요양보호사 자격증 딴 김경렬 할아버지 <전남 순천>
아들·딸 응원에 힘입어 시작
3개월 동안 지각·결석 없이
매일 문제 풀이·컴퓨터 연습
전남 순천농협 최남휴 조합장(왼쪽 다섯번째)과 임직원이 김경렬 할아버지(〃네번째) 등 요양보호사 자격 시험 합격생들을 축하하고 있다.

“‘아, 나 아직 살아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지.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지.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해.”

전남 순천에서 최근 90세 할아버지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화제다. 주인공은 김경렬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가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한 것은 올 5월, 순천농협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다. 순천농협(조합장 최남휴)은 지난해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열고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 취득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예순일곱 된 큰아들이 심심한데 뭐든 배워보라고 하더라고. 딸도 아버지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해보라고 하고. 마침 순천농협에서 요양보호사 교육을 한다고 해서 내 나이에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할 수 있다고, 얼른 오라고 하더라고.”

그날 바로 등록하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주 5일,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에 4시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구순 노인의 체력으로는 절대 쉽지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수업은 행정 규정 등 전문지식을 배우는 이론부터 간병 실습까지 온통 낯설기만 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김 할아버지는 3개월 내내 결석은 물론 지각·조퇴 한번 없이 꼿꼿한 자세로 온전하게 교육에 참여했다. 힘들었을 법도 한 이 과정을 할아버지는 “내내 즐거웠다”고 기억한다.

“올해 엄청나게 더웠잖아. 그런데 여기 오면 에어컨을 켜주니 시원하지, 커피도 마실 수 있지, 피서 온 것 같았어. 무엇보다 사람들하고 어울려 함께 이야기하며 수업받는 게 좋았지. 힘들다는 생각은 안해봤어.”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듣기는 했지만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목표는 아니었다. 그저 교육 내용이 노인성 질환 등 자신의 건강과 직결되다보니 일상생활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교육을 받아두면 아내가 아플 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오지. 우리 집사람은 나보다 네살이나 어리니까 말이야. 도움을 받으면 나이 많은 내가 받겠지. 하하.”

하지만 수업을 듣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머리가 얼마나 남았나’ 궁금했다.

기왕 교육받는 거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젊을 때와 달리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통에 관련 법령이나 운영 지침 등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컴퓨터로 진행되는 시험도 낯설었다. 방법은 딱 하나였다.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

“실기는 수월하게 했는데 이론 시험이 어렵더라고.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외우는 게 쉽지 않아.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지. 매일 하루에 한시간씩 문제집 풀고,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컴퓨터로 모의 시험을 보며 준비했어.”

그 결과 김 할아버지는 단번에 시험에 합격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순천농협 요양보호사 교육원 최고령 합격자였다. 교육과정을 완수하는 것만도 구순 노인에게는 어려운 일일 텐데, 심지어 자격증 시험도 한번에 합격한 것이다.

‘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김 할아버지는 “문제 안에 답이 있으니 문제를 잘 읽으면 된다”는 교사다운 답을 내놨다. 김 할아버지는 보성과 순천에서 중등교사로 지냈었다.

구순까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비결은 뭐든 규칙적으로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과 오후에 집 주변 공원을 2㎞씩 걷는다.

그래도 가는 세월은 어떻게 할 수 없는지 김 할아버지는 요즘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이젠 한계가 온 거 같아. 나이가 드니 밤에 잠을 설쳐. 고향 생각도 자꾸 나고. 앞으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야. 친구들도 다 가고 이제 동창 한명 살아 있거든.”

하하하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김 할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또 다른 도전을 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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