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도 못 끊은 ‘사케’의 맥…기념관 세워 현재와 이어

박준하 2023. 10. 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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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시장, 전통주 붐은 온다] (10) 100년 양조장의 가치를 찾아서
하쿠츠루
생산과정·역사 재현한 자료관 운영…7개 언어로 설명서 비치
지게미로 아이스크림 등 만들어…한해 방문객 14만명 달해
사쿠라마사무네
‘정종’이란 말 시초…지진 탓 무너진 건물 터, 전시실 자리로
지역공헌·전통보전 활발…주민들 사이 ‘희망의 상징’ 부상

일본 사케 양조장과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건 우리 양조장에 미안한 일이다. 역사성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불가피하게 가양주 문화가 끊겼지만, 일본은 여러 환난 가운데서도 양조장을 꾸준히 지켜왔다. 10㎞ 안에 양조장만 25개 있는 고베 나다 지역 중에서도 대표로 꼽히는 400년 역사의 사쿠라마사무네와 280년 역사의 하쿠츠루(백학)에서 그 가치를 발견했다.

고베 대지진 이후 재건한 사쿠라마사무네 기념관. 1층 의자는 옛 양조장 기둥을 잘라서 만든 것이고, 2층 한쪽 모서리에는 과거에 썼던 발효조가 그대로 걸려 있다.

◆정종의 시초, 사쿠라마사무네=‘정종’은 한국에서 사케를 부르는 다른 말이다. 사쿠라마사무네의 술 이름에서 따왔다. 1625년 세워진 사쿠라마사무네는 1907년 부산에 지점을 개설하고 술을 생산했다. ‘마사무네’를 한자로 표기하면 ‘正宗(정종)’이라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사쿠라마사무네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일본 주조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베 나다 지역 술의 핵심인 물 ‘미야미즈’를 발견한 양조장이다. 미야미즈는 경수로 철분이 적고 미네랄이 풍부해 사케 빚기에 알맞다. 또 1906년 일본양조협회가 처음으로 인정한 효모 1호도 이곳의 것이다.

하라다 유미 사쿠라마사무네 기획부장은 “사케에 좋은 물을 써야 한다는 가치 때문에 지금도 다른 양조장과 함께 미야미즈보존위원회를 운영해 수원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400년간 버텨온 사쿠라마사무네도 1995년 고베 대지진 때 절망을 겪었다. 양조장 대문을 제외하고 건물이 모두 무너진 것. 이를 재건해 양조장 자리에 지금의 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 내부 곳곳엔 400년 역사가 묻어 있다. 과거에 쓰던 발효조를 걸어두고, 테이블이나 의자도 옛 양조장 기둥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2층 전시실엔 사케 양조에 쓰던 도구도 한데 모아뒀다.

사쿠라마사무네는 지역사회 공헌활동에도 충실하다. 병원·마트 등의 부지를 지역주민들에게 대여해주고 있다. 또 매년 11월 첫번째 토요일에는 양조장 문을 열어 주민들에게 ‘첫술’을 대접하는 전통도 이어가는 중이다.

하라다 기획부장은 “고베 대지진 이후 지역주민들이 이곳을 ‘희망의 상징’이라고 부른다”며 “다음 세대로 전통이 이어지려면 지역에서 사랑받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하쿠츠루 주조자료관에는 사케 만드는 모든 공정을 생생하게 재현해놨다. 사진은 사케를 만들려고 쌀을 옮기는 모습.

◆술의 역사 한눈에, 하쿠츠루 주조자료관=1743년 문을 연 하쿠츠루는 일본에서도 사케 생산량으로 손에 꼽히는 대형 양조장이다. 사케 역사를 알고 싶다면 하쿠츠루 주조자료관만 한 곳이 없다. 이곳은 1912∼1926년 세운 목조 양조장을 재사용했다. 한해 방문객만 14만명에 이른다.

주조자료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7가지 언어로 번역된 설명서가 눈에 띈다. 당연히 한국어도 있다. 2층으로 된 자료관을 돌아보는 데 꼬박 1시간은 걸린다. 세미(쌀 씻기)-증미(쌀 찌기)-방랭(열 식히기)-제국(입국 만들기)-밑술 담그기-덧술 담그기-술 짜기-거르기-살균-저장-보관의 복잡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만드는 과정을 모두 실제 크기로 재현해 이해가 편하다.

주조자료관을 돌아보고 나면 1층에 있는 사케 판매점에서 갓 빚은 사케 ‘준마이겐슈’도 맛볼 수 있다. 더 마시고 싶다면 500엔(4500원)을 주고 사케 자판기를 이용하면 된다. 하쿠츠루는 남는 지게미 활용에도 열심이다. 지게미로 만든 아이스크림·화장품 등이 방문객 손길을 이끈다.

캐나다에서 사케 여행을 온 올리비아 윌슨씨는 “사케를 마시러 고베에 왔다가 주조자료관까지 오게 됐다”며 “막연하게 마시기만 했던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실제로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후지이 아츠시 나다고고주조조합 사무국장은 “10년 전부터 나다고고 양조장을 묶어 사케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며 “전통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오래된 양조장의 존재는 자칫 잊힐 수 있는 소중한 것을 보존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고베(일본)=박준하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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