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샌프란시스코를 지옥으로 만들었나[이규화의 지리각각]

이규화 2023. 10. 6.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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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원격근무가 도시탈출 방아쇠
도심 오피스 공실률 30% 넘어 비정상
펜타닐 중독자들 좀비처럼 거리 배회
950달러 이하 절도, 공권력 행사 포기
시장의 안이한 대처와 무능, 문제키워

"당신이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고 있다면 꼭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당신이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있다면 그곳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샌프란시스코에 오는 사람들에게 그곳 여름날은 사랑으로 가득 찰 거예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는 머리에 꽃을 꽂은 친절한 사람들이 있어요."

1970년대 전 세계를 풍미한 스콧 메킨지의 감미로운 노래 '샌프란시스코'의 한 소절이다. 물론 반전운동과 히피문화의 일단을 상징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 사람들의 인정을 읊었다. 그 같은 샌프란시스코가, 워즈워드의 시처럼 '한때 그리도 빛나던 빛의 도시'가 침몰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그곳엘 가면 황량함과 악취가 반겨줄 것이다.

◆주민 떠난 자리 채우는 '좀비들'

그간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수식어는 화려 그 자체였다. 미국에서 억만장자가 뉴욕 다음으로 많은 부자 도시, 세일즈포스 X(옛 트위터) 우버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등 빅테크들의 본사가 집결한 혁신 아이콘의 도시, 금문교와 피셔맨스워프 러시안힐과 롬바디스트리트의 낭만이 사시사철 온화한 바람으로 살랑이는 사랑의 도시, 스콧 메켄지의 감미로운 '샌프란시스코' 선율의 도시.

붕괴의 단초는 코로나19가 제공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샌프란시스코 상주인구가 급감하자 도시 활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비싼 주거비용을 견디지 못한 직장인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방 1개짜리 원룸형 임대료가 4주에 3000달러(한화 월 400만원)에 달하는 '살인적' 거주비는 아무리 연봉이 많아도 배겨내기 힘들다.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2020년 87만 명에서 2022년 말 80여만 명으로 2년 새 8%나 감소했고, 이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유니언스퀘어 등 도심 지역의 공동화는 심각하다. 지난 6월 말 기준 도심 오피스 공실률은 30%가 넘었다. 정상적인 도시의 공실률이 높아야 10~15%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비정상적이다. 원 거주민이 떠난 공간은 노숙자, 마약중독자, 좀도둑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 수는 최소 약 8000명에서 최대 2만 명으로 추산된다. 거주인구의 1~2.5%에 달하는 사람들이 길가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다는 의미다. 이 비율을 서울에 적용하면 인구 940만 명의 서울에 최소 9만4000명에서 최대 23만5000명 가까운 노숙자들이 길거리를 배회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2022년 대비 올해 살인 사건은 25%, 강도 사건은 15% 증가했다. 펜타닐 중독으로 '좀비'가 된 마약중독자가 거리 한가운데에 엉거주춤 동상처럼 서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대낮에 아무렇지도 않게 배설을 하는 것도 심심치않게 목격된다. 악취가 진동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X'를 치우는 'poop patrol'이라는 일꾼이 있다. 좀도둑들이 상점에서 버젓이 상품을 가져가도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무법천지 도시로 변했다. CNN이 4개월 전 '대체 샌프란시스코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현지 르포방송을 하는 상황에서도, 리포터 옆으로 물건 값을 지불하지 않고 가지고 나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힐 정도다. 그러자 올 들어 유기농식품 판매체인점 호울스마켓과 백화점 노드스트롬이 점포를 폐쇄했다. 유니언스퀘어 근처에서만 올 들어 40여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 스타벅스도 도심 7개 매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도심공동화, 악화가 양화를 구축

샌프란시스코의 몰락은 코로나19가 뇌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폭약이 쌓여있었다. 터질 때만 기다리던 폭탄이 때가 되자 터졌을 뿐이다.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새너제이, 팰로알토, 버클리 등 베이 에어리어 지역은 미국에서도 부동산가격이 높기로 유명하다. 이 일대 자리 잡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쑥쑥 성장하면서 이 지역에 돈이 모였고, 직원들은 웬만하면 1~2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다. 집값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토양이 잘 조성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은 더 비쌌다. 샌프란시스코는 남쪽 산마테오에서 북쪽 골든게이트공원 끝 금문교까지 남북 30km 동서 폭 10km 내외의 반도지역이다. 비교적 좁은 지역이어서 주택공급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집값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었다. 시정부도 주택공급을 늘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샌프란시스코 시정부와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몰려드는 기업과 투자를 적절히 인근으로 분산해 적정한 집값이 유지되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주택공급을 민간에 맡기는 것이 미국적 문화라 해도 폭등하는 집값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납득이 안 간다.그 대안으로 직장인의 원거리 통근을 가능케 하는 지하철과 전철 등 대중교통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가질 만한데, 그 역시 외면했다. 자동차와 도로교통 중심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가능해지자 고임금 직장인들조차 고비용 도심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뉴욕 맨해튼에 버금갔던 유니언 스퀘어 임대료는 급전직하 하락하기 시작했다. 도로에 차가 줄고 거리에 사람들이 줄어들자 치안은 자연스럽게 악화됐다. 불량 노숙인, 마약중독자, 좀도둑이 거리를 메우면서 거주민들을 가속적으로 몰아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인구 감소와 도심 공동화가 도시를 어떻게 우범지화, 사막화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정치적 리더십 실종과 실책이 결정타

부동산 정책의 실패 외에도 다양한 사회문화적 실책도 샌프란시스코 몰락의 원인이 됐다. 우선 마약 정책의 실패다. 캘리포니아는 2018년부터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 위주로 마약 흡입이 크게 늘었다. 대마의 합법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마약에 대한 심리적 저항력도 약화시켰다. 전체 마약 중독자가 크게 늘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에 따르면 약물 과다로 올 들어 8월말까지 845명이 사망했다. 작년 전체 사망자 725명을 이미 넘어섰다. 특히 요즘은 값싸게 구할 수 있는 펜타닐의 과다흡입이 심각한 문제다. 샌프란시스코 시청 부근에는 길바닥에 나뒹구는 펜타닐 중독자들이 널려있다. 이들이 시청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마치 좀비 영화를 방불케 한다.

펜타닐의 확산은 물론 샌프란시스코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부의 필라델피아나 피츠버그 같은 곳도 도시 거리가 펜타닐 중독자로 넘쳐날 정도로 심각하다. 미국 중앙정부는 물론 주정부, 시정부조차 급증하는 중독자를 어쩌지 못하고 있다. 펜타닐의 원료 공급루트는 중국이 유력하다. 중국으로부터 멕시코 등 중남미를 통해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19세기 영국이 청에 아편을 유입시킨 것처럼, 지금은 중국이 미국에 펜타닐을 밀어 넣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펜타닐 원료 단속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흉내만 낼 뿐 움직이지 않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침몰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다면 단연 현 런던 브리드(London Breed)시장을 꼽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2015년 시 감독위원회 의장이었을 당시 3억8000만 달러를 들여 교도소를 신설하려는 계획을 앞서서 무산시킨 전력이 있다. 2018년 시장이 돼서도 마약중독자 수용시설 증설을 약속해놓고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950달러 이하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절도는 경범죄로 취급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범주의 절도는 대부분 기소되지 않고 있다. 여기엔 교도소가 넘쳐나 웬만한 범죄자는 투옥시킬 수 없는 사정도 작용하고 있다. 이 희한한 절도 죄목은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도둑질은 하되 점잖게 하라'고 타이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CNN 방송 중 목격된 도둑이 태연하게 물건을 훔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상점 주인도 경찰에 신고해봤자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해 신고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현 브리드 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22%, 반대는 60%에 이른다. 브리드 시장이 사태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샌프란시스코 유권자의 76%가 현재 샌프란시스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강력한 공권력을 요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몰락은 코로나19가 촉발했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을 방치한 정책의 실패, 공공 안전을 등한시한 도시행정, 히피의 전통에서 기원한 방종에 가까운 지역문화 등 윤리적 타락도 주요 원인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잘못된 제도와 폐습을 일소하고 정치적 리더십을 회복하는 일이다. 샌프란시스코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재생불능의 버려진 도시, 천당이었던 곳이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추락한 도시로 세계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는 '천조국' 미국의 수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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