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업체들 “맛집 찾아라”… ‘음식 IP’ 확보 전쟁
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유통 업체 GS리테일의 냉장·냉동간편식팀 직원(10명)은 한 해에 60일 지방 출장을 다닌다. 이 팀의 임무는 경쟁사보다 먼저 지역 맛집 찾아내기다. 일단 맛집인 게 확인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식당 주인과 협상해 대표 메뉴를 간편식으로 출시하기 위한 계약을 맺고, 레시피(요리법)를 전수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부산 기장, 전남 해남 같은 남부 해안가는 물론 제주도, 울릉도 같은 섬까지 가리지 않고 돌아다닌다. GS리테일 관계자는 “간편식팀에 배치되고 나서 체중이 10kg 이상 불지 않으면 제대로 일 안 한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많이 다니고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식자재·급식 기업 현대그린푸드 신상품개발팀 직원 6명도 ‘숨은 맛집을 찾아라’라는 미션이 떨어질 때마다 전국으로 흩어져 현지에서 살다시피 한다. 맛집 발굴이 끝이 아니다. 간편식으로 출시하려면 대량생산을 위한 재료 공급처까지 확보해야 한다. 지난해 한 팀원은 전남 담양의 ‘대나무잎 국수’ 재료인 분죽(어린 죽순)을 대량 구매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담양군 내 전통 시장을 훑고 다녀야 했다. 상인들이 1년 중 3주만 수확할 수 있는 귀한 분죽을 외지인에게 잘 팔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원은 안면을 트고 무작정 냉동고 앞에서 버티고 서 읍소하고 나서야 겨우 분죽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식품 업계에서 맛집 레시피, 이른바 음식 IP(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확보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간편식 시장이 대폭 성장하면서, 경쟁사와 차별화된 레시피를 활용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전담 팀을 꾸려 전국을 훑고 있는 것이다. 농심과 오뚜기 같은 식품 제조 기업은 물론, 현대그린푸드·CJ프레시웨이 등 식자재·급식 업체에 편의점과 대형 마트, 컬리 같은 이커머스 업체도 맛집과 손을 잡고 간편식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업계에선 “영상 콘텐츠 기업이 인기 소설이나 웹툰의 지식재산권(IP)을 입도선매하는 것처럼 식품 기업들도 대박 가능성이 있는 ‘음식 IP’를 긁어모으는 것”이란 말이 나온다.
◇다양한 간편식 빠르게 개발
기업들이 ‘음식 IP’를 확보하려는 경쟁은 치열하다. 농심은 지난 8월 말 80년 전통 한식 전문점 한일관과 협업해 갈비탕 등을 간편식으로 출시했다. 오뚜기는 사찰 음식 전문점인 두수고방과 협업해 식물성 원료를 넣은 채식 컵밥과 죽을 간편식으로 만들었다.
현대그린푸드는 식자재 유통과 급식을 하는 강점을 살려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어놨다. 1000억원을 투자한 스마트푸드센터에 볶음솥·증기오븐 등 다양한 규격의 설비를 마련해 놓고, 전국에서 모은 20여 음식 IP를 간편식으로 만들고 있다. CJ프레시웨이는 제주 맛집의 간편식을 전국 급식장에 유통하는 식으로 음식 IP를 확보해 운영하고 있다.
GS25나 CU 같은 편의점,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는 자사의 간편식 소비층을 겨냥해 주로 2030이 선호하는 맛집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GS25의 경우 몽탄(고깃집), 효뜨(베트남 쌀국수) 등과 협업하면서 올해 9월까지 간편식 매출이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이커머스 업체 컬리는 신선 식품 유통망을 무기로 음식 IP를 수집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으로 간편식을 만들어 판다.
◇음식 IP 전문 플랫폼까지 등장
라면·과자 제조, 편의점 운영, 온라인몰 등 ‘본업’이 따로 있는 기업들이 음식 IP로 간편식 만드는 데 몰두하는 이유는 뭘까. 음식 IP는 다른 콘텐츠와 달리 아직 법적 보호 개념이 희박하다. 하지만 선점할 경우 마케팅 효과를 얻을 뿐 아니라 기존 설비를 이용해 다양한 제품을 내놓기 쉽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전 국민이 열광하는 초대형 히트 상품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각 기업이 신제품을 기획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지역 맛집의 레시피를 활용하면 기존 보유 시설이나 기술만 갖고도 신제품을 빠르고 다양하게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기업들이 음식 IP를 받아 신상품을 내놓을 경우 개발 기간은 수개월 이상 단축되고 비용도 30~50% 정도 절감된다고 한다. 또 자사와 협업한 지역 맛집이 온라인에서 유명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면, 매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음식 IP를 제공하는 식당 입장에서도 기획·제조·유통에 신경 쓰지 않고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간편식 판매분에 따라 수수료도 받기 때문에 협업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음식 IP 수요가 계속 증가하자 이를 대량 수집한 뒤 플랫폼 사업을 하는 곳도 생겨났다. 국내 밀키트·간편식 제조 1위 업체인 프레시지는 올해 9월 기준으로 확보한 음식 IP 55개를 활용해 직접 간편식을 만들어 유통 기업에 제공하거나 제조 기업과 식당을 연결하고 있다. 프레시지 관계자는 “전체 밀키트·간편식 사업 중 IP를 활용한 매출이 30%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미식 추천 플랫폼 캐비아도 음식 IP 150개를 확보해 100억원대 투자를 유치하는 등 사업을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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