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만 최고? … 빌딩 살리는 알짜 콘텐츠는 따로 있다
지난 5일 오후 7시쯤 경기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퓨전 한식당 ‘무월 수원행궁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정문(장안문)에서 걸어서 1분쯤 떨어진 이 식당엔 30여개 테이블이 손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젊은층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박모씨는 “장안문 일대 ‘야경(夜景) 맛집’ 중에서 분위기가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았다”고 했다. 실제로 2021년 말 문을 연 이 매장은 멋진 야경으로 유명한 장안문 상권에서 최고 핫플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매장을 기획한 황윤민 무월F&B 대표는 “오후 3시에 문을 여는 동시에 거의 만석이고 주말이면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 식당은 외관부터 독특하다. 모두 까만 벽돌로 마감했다. 매장 내부는 더 이색적이다. 중정(中庭)에 심은 소나무 사이로 지름 1m 정도 보름달 모양 조형물이 허공(?)에 떠있다. 모든 테이블은 중정을 둘러싸고 있어 매장 어디서나 어스름한 달빛을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대형 유리 통창을 통해 매장 밖 장안문 야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 때문에 저녁마다 막걸리에 보쌈·전골·튀김 등 퓨전 한식 안주를 곁들이며 야경을 즐기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원래부터 이 건물이 핫플은 아니었다. 1층엔 낡은 여관이 있었는데 10년 넘게 사실상 공실로 방치됐고 2층엔 주인 부부가 살고 있는 노후 상가주택이었다. 황 대표는 “수원화성과 야경을 테마로 스토리를 개발해 죽어있던 건물을 살려냈다”면서 “공실에 시달리는 건물, 활력 잃은 건물이라도 콘텐츠가 확실한 브랜드가 들어오면 얼마든지 살려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땅집고가 오는 18일 개강하는 ‘공실 빌딩 살리기 임대차 전략 2기’ 과정에서 강사로 나선다.
◇”스타벅스? 필요없다…콘텐츠가 중요”
그동안 건물주 사이에는 ‘스타벅스’가 속칭 최애 임차인으로 꼽혔다. 스타벅스 유치를 위해서라면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는 건물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인식이 달라졌다. 스타벅스가 아니라도 흥미롭고 개성있는 콘텐츠를 보유한 브랜드 임차인들이 건물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황 대표는 죽은 건물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서사)이 필요하다고 했다. 브랜드와 매장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황 대표는 “건물 인근에 유명 건축물이나 역사 유적, 바다·강·호수·공원처럼 내세울 만한 랜드마크가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면서 “이런 랜드마크를 연상케하는 인테리어를 적용하거나 관련 메뉴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매장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 스토리텔링이 완성된다”고 했다.
무월 수원행궁점에도 스토리가 담겨있다. 수원화성은 조선 22대왕 정조가 당쟁에 휘말려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며 축조했다. 이를 감안해 건물을 까만 벽돌로 뒤덮어 사도세자가 숨을 거둔 뒤주처럼 만들었다. 창문은 장안문 쪽을 제외하고 모두 막았다. 당시 사도세자가 뒤주 안으로 새어들어오는 달빛을 위안삼았다고 상상해 매장 중정에는 보름달 모형을 뒀다. 술과 안주를 은은한 달빛을 연상시키는 막걸리와 퓨전 한식 위주로 구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 대표는 “고객이 해당 상권을 찾는 이유를 극대화한 매장을 들여야 건물을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생활형 상권에선 ‘실속형’이 유리
만약 건물이 관광지 성격이 약한 ‘생활형 상권’에 속했다면 다른 임대차 전략이 필요하다. 생활형 상권은 아파트 같은 주거지역 상권이나 기업이 많은 오피스 상권을 말한다. 이런 곳에선 방문객에게 실익을 주는 매장을 유치해야 한다. 매일 질리지 않고 찾을 만큼 맛이 좋거나 가격이 저렴한 매장 위주로 건물을 채워야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유다미 브라이튼중개법인 대표는 “주거지역 상권에서는 밀키트 무인점포가 인기”라며 “1인 가구 비율이 높은 지역이라면 코인세탁소, 공유창고, 헬스장, 필라테스 학원도 공실을 채워주는 핵심 임차인으로 고려할만하다”고 했다.
건물 상층부에 듬성듬성 점포가 비어있다면 공실을 한 데 모아 넓은 점포를 만든 다음 임차인 유치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이를테면 5층짜리 건물에 3층과 5층이 공실이라면 4층에 있던 임차인을 3층으로 옮기도록 한 뒤 4~5층을 묶어서 한꺼번에 임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임대차 공간이 넓어진 상층부에는 병원·학원 등 장기 계약 가능성이 높은 세입자를 들일 수 있다. 기존 임차인에게 매장 이전을 부탁할 경우 인테리어 비용 지원이나 렌트 프리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
유 대표는 “건물주는 임차인을 월세 내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건물을 살리는 파트너로 여겨야 한다”며 “내 건물이 들어선 상권 성격에 파트너가 가진 콘텐츠가 적합할지 고민하고, 콘텐츠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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