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쓴 육아일기 17권… “셋이 알아서 노는 것 보면 웃음”
[아이들이 바꾼 우리] 삼 남매 아빠 함정규씨
서울 동작구에 사는 함정규(44)씨는 준혁(12)·채원(9)·지원(7)이 삼남매를 키우는 아빠다. 고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아내 주은주(39)씨가 오전 7시 일찌감치 출근하면 아이들 아침 등교 준비는 아빠 함씨 몫이다. 큰아들과 두 딸이 씻고 밥 먹고 옷 챙겨 입느라 집 안이 복작복작 바쁘게 돌아가지만, 함씨가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삼 남매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착착 지킨다고 했다. “누가 먼저 씻을까” 하고 아빠가 물으면, 아이들이 알아서 가위바위보로 샤워 순서를 정하는 식이다. 함씨는 “첫째와 둘째가 밥 먹고 가방 챙기는 모습을 막내가 보고 따라 하고, 셋이서 같이 학교까지 걸어간다”며 “크게 걱정할 게 없다”고 웃었다.
함씨는 “아이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보단 셋이 키우기에 덜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자녀가 세 명이면 한 명일 때보다 더 바쁠 것 같지만, 아이들이 서로 보고 배워 따로 가르치거나 채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셋이서 오순도순 모여 장기알로 알까기하고 노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고 했다.
형과 오빠, 언니와 누나, 동생이 함께 자라는 아이들의 장점은 무엇일까. 함씨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형제가 많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외동아들로 자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털어놓을 형제가 없어 늘 아쉬웠다는 것이다. 그는 “2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참 외롭고 힘들었다”며 “우리 아이들은 힘들 때 서로 버팀목이 돼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함씨는 “돌쟁이부터 대여섯 살짜리까지 함께 돌보느라 참 힘들었지만, ‘아빠’ 하고 방긋 웃으며 품에 안기는 아이들을 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한 감정이 밀려온다”며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개인 시간을 희생하는 게 아깝지 않으냐고 묻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30대 초반까지 부동산 컨설팅 사업 분야에서 일했던 함씨는 2013년 이직했다. 주말도 없이 주 6~7일 근무를 이어갔던 함씨는 “이대로 가면 아이에게 나는 ‘존재감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루 7시간 정도 일하고, 퇴근과 휴일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점포 관리직으로 옮겼다”고 했다. 급여가 줄면서 생활이 빡빡해졌지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 견딜 수 있다고 했다.
함씨는 2018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육아 일기를 쓰고 있다. 아이들과 하루하루 보내며 흩어져가는 일상의 소소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다. 저녁마다 온라인 육아 일기 플랫폼에 200~300자 분량 글과 4~5장 사진을 올린다. 지금까지 육아 일기 책을 17권 만들었다. 막내 지원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때론 숙제처럼 느껴지고, 쓸 내용이 없어 고민도 하지만, 미래의 어느 날 아이들이 좋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함씨는 2021년 6월부터 지난 5월까지 2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아이 셋을 돌보느라 10년간 경력 단절 기간을 겪은 아내의 직장 복귀를 위해서였다. 그는 “우리 회사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직도 상당수 기업에선 여자든 남자든 육아휴직을 쓰면 복귀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아빠 2명이 비슷한 시기에 육아휴직을 썼는데, 한 명은 복귀할 무렵 회사에서 권고 사직을 제안받았고, 나머지 한 명은 퇴사를 결심하고 육아휴직을 사용했다고 한다.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더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합니다. 위원회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한 행복을 공유하고 싶은 분들은 위원회(betterfuture@korea.kr)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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