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63] 바닥난 국민의 고혈
먹을 것이 늘 부족해 기름기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던 때의 사람들과 현대인의 영양 개념은 사뭇 다르다. 특히 지방(脂肪)에 관한 선호는 극명하게 차이를 드러낸다. 그 ‘기름기’에 관한 대표적인 한자를 꼽으면 우선은 ‘고(膏)’다.
몸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분인 피[血]와 병렬해 ‘고혈(膏血)’이라고 적는 단어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기름기와 혈액을 가리키지만, 속뜻으로는 백성들이 힘들여 모은 재산을 지칭한다. 백성에게는 제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금 술잔 향긋한 술은 천인의 피요, 옥쟁반 맛난 음식은 만인의 기름이로다(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라는 시문에도 등장한다. 과거 급제 뒤 걸인으로 변장한 어사 이몽룡이 부패한 변 사또의 생일잔치에서 적었다는 글이다.
중국에서는 북송(北宋) 이후 줄곧 관료들의 백성 착취를 경계했던 명문(銘文)에 나온다. “네가 받는 봉급은 모두 백성들의 기름이다. 뭇 사람들은 마구 대하기 쉬워도 하늘은 속이지 못한다(爾俸爾祿, 民脂民膏, 下民易虐, 上天難欺).”
이 글은 북송 태종이 관원의 부패를 경계하려 돌에 새겨 각 관청에 두게 했다는 ‘계석명(戒石銘)’으로 자리 잡았다가 후대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후촉(後蜀) 황제 맹창(孟昶)의 글을 16자로 줄여 쓴 내용이다.
현대 중국 집권 공산당의 부정부패는 아주 유명하다. 부패한 관료들의 수탈 대상이 바로 국민의 ‘고혈’이다. 이제 그마저 바닥나 지방 관료들의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기 어렵다고 한다. 공산당 통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얘기다.
윗부분을 늘 베어 먹히는 신세라서 중국 국민의 처지를 부추[韭菜]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뜯어 먹힐 여지가 없는 듯하다. 그로써 관료들의 궁핍도 심해진다고 하니 중국의 하늘도 꼭 무심치만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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