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탕후루만 먹고 살 순 없다
탕후루는 평생 먹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고작 설탕 바른 과일이 뭐라고 먹지 않겠다고 결심씩이나. 집 앞에 탕후루 가게가 세 군데나 생겼는데 주말 오전이면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생이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줄 서 있었다. 평일 저녁에는 중고생들이 탕후루 꼬치를 양손에 잡고 가게 앞에서 왁자지껄 떠들었다. 자주 가던 시장 과일 가게 사장님은 아예 숍인숍(매장 내 매장) 형태로 탕후루 가게를 냈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지만, 왠지 유난스러운 이 행렬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박약한 의지는 설탕 코팅보다 깨지기 쉬웠는지 이번 추석 연휴 때 탕후루를 사 먹고야 말았다. 충동 섭식의 이유 중에는 고향 어른들의 쓴소리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다. 수화기 너머 ‘술 먹고 늦게 돌아다니지 마라’부터 ‘영양제 챙겨 먹어라’로 이어지는 쓴소리는 주변 소음 차단 이어폰이라도 낀 것처럼 고음질로 귀에 쏙쏙 박혔다.
달콤한 말만 듣고 싶어 하는 게 나만의 일일까. 쓴소리가 허용되지 않는 공간 중 하나가 요즘 학교 교실이다. 특히 고3 학생들은 수능을 40여 일 앞두고 정규 수업 시간에 스터디 카페에 간다며 조퇴하고, 결석과 지각도 밥 먹듯이 한다고 한다.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 출결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교사가 말려도 소용없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한 친구는 “2학기 개학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결석과 조퇴, 지각이 200회가 넘는다”면서 “정당하지 않은 결석과 조퇴를 인정해달라고 학생들이 당당하게 요구하고,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말리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쓴소리에 내성이 없는 학생 중 극단으로 치닫는 학생도 있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려고 하는 말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경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교육 활동 침해 건수가 코로나로 2019년 2662건, 2020년 1197건, 2021년 2269건으로 줄었다가, 작년 3035건으로 급증했다. 교사가 수업 중 자는 고등학생을 깨우자 “맞짱 뜨자” “씨X” 등 욕설을 하고, 초등학생이 교사 목에 칼을 들이댄 사례도 있다. 오죽하면 교육부가 ‘교권 침해 보험’까지 내놨을까.
‘아이에게 부정어로 말하지 말라.’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지만, 교육 영역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져 익숙한 조언 중 하나다. 식당이나 공공 장소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뛰면 안 돼” 대신 “걸어 다녀”라고 말하는 식이다. 아이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부정당하는 기분도 덜하고, 필요한 행동이 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어서 더 좋은 교육법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알려주는 즉각적이고 단호한 쓴소리가 필요할 때는 분명 있다.
쓴소리를 참을 수 없게 된 건 ‘꼰대’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때부터가 아닐까. 장난처럼 “아유 저 꼰대”라는 말이 오가는 사이, 조언하는 어른에 꼰대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어느새 꼭 필요한 말까지 눈치를 봐가며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탕후루만 먹고 살 순 없다. 당장은 달콤하지만 소리 없이 높아지는 혈당과 혈압에 당하지 않으려면, 쓴맛도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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