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05] 표기의 ‘기로’에 서서
먹을거리 그득한 재래시장, 군침이 샌다. 구경하는 즐거움으로 일단 참자. 눈 밝히고 다녀보니 더 재미난다. ‘갓김치, 파김치, 오이소백이.’ 표준말 ‘소박이’보다 맛깔스러운걸. ‘바다에 왕자 멸치.’ 바다’의’가 아니면 어떠랴, 기억도 아스라한 마린보이를 다시 본 셈인데. ‘고기 삶아드림니다.’ 하마터면 ‘립’으로 여겨 지나칠 뻔했다.
언론 맞춤법이야 이리 엉성하지 않지만, 제법 까다로운 대목이 있다. ‘베네치아 당일치기 입장료 도입키로.’ 관광객이 많아 괴로워한다는 내용도 그렇거니와, 제목에 눈이 꽂힌다. ‘도입키로(←도입하기로)’는 맞는 표기일까.
<어간 끝음절 ‘하’의 ‘ㅏ’가 줄고 ‘ㅎ’이 다음 음절 첫소리와 어울려 거센소리가 날 때는 거센소리로 적는다.> 맞춤법의 이 규정은 ‘논의키로’ ‘출발키로’처럼 ‘하’ 앞이 모음이거나 ‘ㄴ, ㄹ, ㅁ, ㅇ’ 받침 곧 유성음일 때 해당한다. ‘건대, 게, 고자, 다, 도록, 지’ 따위 어미(語尾)가 붙어도 ‘장담컨대, 편안케, 활용코자, 시원타, 자제토록, 칠칠치 못해’처럼 쓸 수 있다. 당연히 ‘장담하건대, 편안하게…’같이 본래 형태로도 쓴다.
‘도입하다’처럼 ‘하’ 앞 음절 받침의 소리가 무성음(ㄱ, ㄷ, ㅂ)이면? 일부 어미와 만나 ‘하’를 아예 생략할 수 있다. ‘짐작건대(짐작컨대 X), 섭섭다(섭섭타 X) 못해, 생각지(생각치 X) 않은’식으로 쓰는 것이다. 다만 ‘게, 고자, 기로, 도록’과 합치면 ‘깨끗게, 생각고자, 계속기로, 집합도록’ 같은 표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깨끗케, 생각코자, 계속키로, 집합토록’도 안 되고 ‘깨끗하게, 생각하고자, 계속하기로, 집합하도록’으로만 써야 한다. ‘도입키로’ ‘도입기로’ 다 아니고 ‘도입하기로’가 옳다는 얘기다.
‘암돼지 생고기 3근 9900원.’ 암퇘지가 맞는데, 하며 고개 돌리니 누룽지가 보인다. ‘1봉지 만원 들었다~ 놨다~ 하지 마시고 가져가 주세요.’ 애교스럽고 정확하기까지? 다음엔 이거라도 사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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