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본래 의미를 탐구하는 희곡
욘 포세는 소설·시·에세이·아동문학 등 다양한 글을 쓰고 있으며, 주요 장르는 희곡이다. 비교문학을 전공한 전업 작가로 ‘뉘노르스크(Nynorsk·신노르웨이어)’라는 언어로 글을 쓴다. 뉘노르스크는 노르웨이 인구의 10~15% 정도인 약 50만 명이 쓰는 언어지만, 고(古)노르웨이어 고유의 민족적 특성이 강해 대부분의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포세의 작품이 주로 다루는 주제는 가족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 볼 수 있는 인생, 사랑과 죽음 같은 우리 삶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모습들이다. 그의 작품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삶의 그림들이 단순한 구조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는 매번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이, 남자(남편), 여자(아내), 소년, 소녀들이다. 단순한 일반인들이며 이들에겐 고유의 성격도 부여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관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항상 평범함과 보편성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든다.
포세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그 관계를 철저하게 관찰하고 파악해 낸다. 그의 작품이 ‘보편성의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그만큼 포세가 드러내는 현실은 구체적이다. 굵은 윤곽으로 이루어진 담담한 그림, 그 사이의 여백에 인간의 삶이 가진 구체적인 모습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대인이 만들어내는 의사소통 부재의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며 인간 의식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원형질 같은 것이다.
포세의 언어는 배우와 연출자에게 커다란 도전이다. 그의 언어는 철저하게 압축되고 축약된 형태로, 계속해 반복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구두법 없이 쓰인 그의 텍스트는 해석과 리듬의 모든 힘을 배우와 연출자의 손에 넘겨준다. 포세의 언어에는 불필요한 소리가 없다. 그렇기에 삶의 본질적인 것이 파묻히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말의 고유한 움직임 자체이다. 거의 모노톤의 문장들, 스타카토처럼 던져지는 문장들 속에 여러 삶의 구조들, 인간의 내면 구조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는 가운데 응축된 형태로 노출된다. 여기에 침묵의 순간이 조용히 자리한다. 인물의 대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이’의 침묵, 이 행간을 인간들의 말 없는 진실이 넘나든다. 소리와 소리 없음의 독특한 리듬, 깊은 성찰로 채워진 여백, 긴장과 이완의 반복이 주는 깊은 공간적 느낌을 통해 포세는 인간의 삶이 가진 진정성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현란한 이미지와 물질성으로 가득 찬 것이 현 시대 희곡의 특징이라면, 포세의 작품들은 본질적인 언어 예술로서 희곡의 회복을 의미한다.
포세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형식으로 희곡을 새롭게 발견한다. 그는 희곡 ‘어느 여름날’(1999)로 2000년 북유럽 연극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이름’(1995)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연극제에서 독일어권 최초의 공연을 이룬 후 오스트리아의 연극 오스카상인 네스트로이상을 수상하며 유럽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 포세는 2010년 국제입센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문학적 위치를 인정받았고, 2014년에는 유럽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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