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정문에 버려진 내가 주한미군으로… 부임날 펑펑 울었다”
외할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었고, 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주한 미군이었다. 자신은 주한 미군으로 7년을 복무했다. 지난 7월 24일 대구 ‘캠프 헨리’에서 정보 장교로 전역한 이준(50) 예비역 중령 이야기다. 전역 날은 주한 미군 혼혈 자녀였던 모친이 역시 주한 미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 중령을 대구 ‘캠프 헨리’ 앞에 버린 지 꼭 50년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달 20일 미국 출국길에 만난 이 중령은 “한국은 내게 정체성을 줬고 미국은 내게 기회를 줬다”며 “3대에 걸쳐 주한 미군으로 한미 동맹 강화에 노력했다. 이제는 민간에서 한미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1973년 7월 24일 모친이 갓 태어난 자신을 ‘캠프 헨리’ 정문에 버린 날을 이 중령은 “삶이 새로 시작된 날”이라고 했다. 이 중령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모친은 아버지 부대를 찾아내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갓난아기를 버렸다. 아버지는 아기를 맡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당시 부대 중대장이 아기를 거두라고 명령했고 아버지는 이 중령을 대구 위탁 가정에 보냈다. 이 중령은 “당시 혼혈은 한국에서 심한 차별을 받았다”며 “위탁 가정에서 학교는커녕 노예처럼 학대를 받았다”고 했다. 국적도 없이 미군 물품 암시장에서 사탕을 받으며 심부름꾼으로 일했다.
1984년 열한 살에 전역한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가면서 인생 전환점을 맞았다. 워싱턴주립대에 진학해 프로 풋볼 선수를 눈앞에 두던 1994년 아버지가 한국 흥신소를 통해 찾아낸 생모와 21년 만에 만났다. 공교롭게도 어머니는 다른 미국인을 만나 이 중령의 워싱턴주 자택 근처에 살고 있었다.
이 중령은 “아버지에게 나를 거둬 키우라고 명령했다는 ‘캠프 헨리’ 중대장 이야기를 듣고 나도 군인이 되기로 진로를 바꿨다”고 했다. 이라크와 나토(NATO), 미 국방부에서 복무한 이 중령은 2005년 주한 미군 발령을 받았다. 미국으로 떠난 지 21년 만이었다.
이 중령은 “어린 시절 멸시와 차별의 기억에 다시는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았다”며 “하지만 막상 한국 땅을 밟으니 집에 온 것처럼 감정이 북받쳐 펑펑 울었다”고 했다. 경북 칠곡과 용산, 의정부 등에서 근무하며 한국인 최효진(43)씨와 결혼해 아들 주원(9)군도 뒀다. 아내 최씨는 “한식만 먹는 남편의 피는 천상 한국인”이라며 “죽어서도 꼭 한국 땅에 묻어달라고 한다”고 했다.
‘이준’이라는 이름도 대구 위탁 가정에 있을 때 미아 상태의 이 중령을 발견한 대구 경찰이 지어준 것이었다. 이 중령은 “대구는 내 조국”이라며 “이제는 받은 만큼 은혜를 갚을 때”라고 했다. 마지막 군 생활 2년을 자신이 버려졌던 대구 ‘캠프 헨리’에서 운명처럼 마친 이 중령은 대구 수성대와 고아원, 아파트 단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영어 강습 봉사 활동을 꾸준히 했다.
인생 2막으로 미국에서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는 이 중령은 “주한 미 대사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이 중령은 대구에 있을 때 홍준표 대구시장과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등을 만나 다문화 가정 교류를 위한 간담회를 갖고, 이상봉 디자이너와 다문화 학생 ‘진로 멘토링’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찾았다. 그는 “70년이 된 한미 동맹은 더욱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나 역시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양국 관계를 더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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