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핵심기술 유출 7년간 47건… 보호위반 제재 조치는 0건

박현익 기자 2023. 10.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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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핵심기술 보호]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무방비
정부, 기술보유 기업 관리 소홀… 위법 적발해도 과태료 부과 안해
유출 피해 키워 경제안보 악영향
정부가 국가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기업 의무사항을 법으로 정해 놓고도 15년째 단 한 차례도 위법사항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16년 이후 최근까지 47건의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이 적발됐다. 기술 유출 방지는 사법 당국의 강력한 처벌에 앞서 기업의 기본적인 예방조치가 필수인데, 정부가 감시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술보호법상 과태료 규정이 마련된 2009년부터 최근까지 정부의 위반 사항 관련 과태료 부과가 ‘0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기업을 표본으로 뽑아 기술 보호 규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현장조사를 하면서도 형식적 절차에 그친 셈이다. 양 의원실 관계자는 “관련 부서 확인 결과 현장조사 횟수나 점검 결과 등 지난 15년간 기본적인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국가핵심기술은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성장잠재력이 높아 국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보 및 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기술을 가리킨다. 3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급 반도체와 리튬이온배터리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과태료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관리하고 있는 기업 또는 기관이 유출 방지를 위한 조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 부과된다. 침해 행위가 발생했을 때 신고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기술 보호를 위한 실태조사에 응하지 않았을 때도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기업들의 기술 보호 조치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기술 유출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국가핵심기술은 예방조치 소홀로 일단 밖으로 유출되면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가경쟁력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 7월까지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총 153건의 산업기술 해외 유출이 적발됐다. 이 중 47건(30.7%)이 국가핵심기술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그동안 행정처분보다는 계도에 무게중심을 뒀지만 앞으로는 경각심을 갖고 위반사항에 대해 과태료 부과 등 엄정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보 및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우려가 있는 산업기술.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12개 분야 73개 기술이 지정·관리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 기업-기관 163→265곳 늘려만 놓고 보호는 뒷전

정부, 2021년엔 현장조사 전무
올해 20곳 점검, 8곳 위반 적발
과태료 처분은 1곳에도 안 내려
대상 기업도 실태조사 응답 절반뿐

글로벌 첨단기술 패권전쟁이 격화하면서 각 나라는 자국 기술을 보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중국으로의 기술 이전을 막기 위해 아예 수출 규제까지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핵심 기술은 일단 외부로 유출되는 순간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에 미리 높은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국가핵심기술 관리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가핵심기술 보호 의무가 있는 기관 및 기업 수는 265곳이었다. 2019년과 2020년 각각 163곳, 159곳이었는데, 2021년부터 265곳으로 부쩍 늘어났다.

정부는 국가핵심기술을 법령에 따라 보호하고 있는지 온라인 실태조사를 매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상 기관 및 기업 중 실태조사에 응한 곳의 비중은 2020년 89.3%에서 2021년 58.5%, 지난해 52.5%로 급격히 낮아졌다. 지난해의 경우 절반이 정부 실태조사를 외면한 것이다. 실태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것도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1차 위반 시 300만 원, 2, 3차에는 각각 500만 원이다.

현장조사의 경우 2021년에는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도 전체 대상 기관 및 기업의 2∼3% 수준인 5∼10곳에 대해서만 현장점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다만 올해 들어서는 총 20곳의 현장점검에 나섰다. 그 결과 ‘보호구역 설정·출입허가 및 휴대품 검사’와 관련해 5곳, ‘전문인력 이직관리 및 비밀유지 계약 체결’ 관련 3곳에서 국가핵심기술 보호 의무 이행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과태료 처분은 없었다. 양 의원실 자료 요청 이후 산업부 측은 “현재 기업·기관별 미흡 사항을 통보해 자체적인 개선을 유도하고 있으며 연내 보호조치가 이행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법령에서 요구하는 유출 방지 조치는 보호구역 출입 시 휴대전화 검사, 국가핵심기술 관리책임자 지정 등 기본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지키지 않을 경우 기밀 유출로 직결될 수 있다. 실제 삼성전자 직원이었던 최모 씨가 반도체 최첨단 공정인 ‘3나노’ 기술을 빼돌리려다가 지난해 기소됐는데, 그는 개인 휴대전화로 내부 자료를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지난달 대법원에서 최 씨에 대한 징역 1년 6개월 실형이 확정됐다.

보호조치를 소홀히 할 경우 사후 유출범에 대한 처벌이나 민사 소송 과정에서의 피해 구제도 어렵게 된다. 산업기술보호법과 함께 기술 유출을 규제하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로 인정받는 데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영업비밀이 되려면 ‘비밀관리성’을 충족해야 하는데 법원은 “어떤 형태로든 영업비밀 보유자의 노력이 투여돼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2018년 2월 선고된 한 의류 관련 회사의 영업비밀 침해 사건과 관련해 보호 조치가 미흡해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례도 있다. 해당 기업이 보안관리 규정을 실시하지 않았고 보안시스템 및 보안관리자를 두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임형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업이 기본적인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경우 영업비밀에 대한 권리가 부정되기 쉽다”며 “실제 비밀 관리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아 법원에서 피해가 인정되지 않은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관 및 기업에 대한 기본적인 통계조차 없다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국가가 지정한 73개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관이나 기업이 스스로 신고를 해야 정부 관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보당국이나 경찰 등에 의해 적발된 것보다 훨씬 많은 핵심기술이 외부로 빠져나가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에서 이 같은 사각지대가 더 넓을 것으로 우려된다. 재계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 중에는 대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는 곳들이 많아서 단순히 한 기업만의 피해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지원책을 병행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가장 기본적인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어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보호 조치가 제대로 시행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고양이 손에 생선가게 맡기듯 모든 걸 기업 및 기관에 맡기니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질 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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