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신인문학상] 수상소감(3명)

김진형 2023. 10.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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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박태양 “지나온 시간 속 남은 것, 마음을 다해 쓸 것”

KTX가 지나가는 터널 위 공원.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멀리 선로를 따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꽃과 풀 사이를 누볐다. 매일 운동복이 흠뻑 젖도록 걸었다. 시속 250㎞의 진동 위, 그것도 흔들 벤치에 앉아 지나온 시간과 덧없는 것들, 남은 것들을 오래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이야기가 됐다. 그 시간이 있어 가능했다.

당선 소식에 화답하는 내 목소리가 잠시 떨렸다. 맹세컨대 기쁨보다는 당혹에 가까웠다. 습작 기간이 짧고 아는 게 천박하여 먼 길을 어찌 갈까 염려됐다. 그런 염려조차 과분하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쓰고 싶어지면 쓰기로 한다. 아니어도 어쩔 수 없다. 단, 이미 알아버린 쓰기의 즐거움을 쉬이 내려놓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쓸 때는 깊고 넓게 되묻겠다. 마음을 다해 쓰겠다. 그런 다짐이 나의 힘이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작은 이야기 마을’ 문우들과 엄창석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늘 함께 해준 가족들, 특히 오랫동안 아버지를 모셔온 언니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박태양= 1967년 경북 영덕 출생. 대구 거주. 경북대 사범대 영어교육과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 현 중학교 교사.

■시-박우나 “약한 존재 향한 상상력으로 짓는 ‘언어의 사원’”

W. H. 오든은 자신의 시를 끊임없이 수정했다. 시는 절대로 완성되지 않고 폐기될 뿐이라고 한다. 시의 완성과 폐기 사이에서 늘 괴롭다. 무언가에 곧잘 빠져드는 나는 이내 망아 상태에 이른다. 그 순간 무엇에 빙의된다. 과거의 사소한 기억이기도 하고, 비 그친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 한 마리이기도 하고, 자동차 바퀴에 가만히 눌린 초록 머리 새이기도 하고, 먼 미래였으면 하는 친구의 장례식장이기도 하다. 나는 이 순간 눈두덩이 뜨거워진다.

시간의 존재는 무(nothing)에서 비롯한다. 이미 가버린(no more)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not yet) 미래 사이에서 비로소 현재가 드러난다. 그래서 시적 사유는 나를 여기에 머물게 하는 지금이다. 내 감각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아닌, 나 자신을 붙드는 또 다른 현상에 머물러 있는 영원한 지금이다.

무엇을 조우하든 나는 이를 현재화해서 ‘언어의 사원’(詩)을 짓는다. 상상력은 끊임없이 약한 존재를 향해 있다. 시의 세계로 안내한 이승하, 이수명, 조향미, 이문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당선 소식을 들은 날 꿈에 찾아온 엄마에게 너무 보고 싶었다며, 왜 이제야 오냐며 투정 부렸다. 모두에게 고맙단 말을 전한다.

박우나(본명 박혜정)= 1969년 부산 출생. 경기 거주. 중앙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 제5회 혜암아동문학상 동화 부문 당선.

■동화-정복연 “아이들 소리에 귀 기울이는 빛 되고 싶어”

빗소리를 들을 때면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여덟 살 때였습니다. 비가 내렸어요. 그날도 어머니가 아픈 저를 들쳐업고 학교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길가에 비를 맞으며 무언가가 놓여있었습니다. 그건 제비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제비는 어떠한 이유로 생명이 다하고 말았더군요.

빗줄기 사이로 저마다 바쁜 사람들, 하지만 어머니는 죽은 제비를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두 손으로 제비를 받쳐 들고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고이 묻어주었습니다. 저는 비 내리는 그날, 제비의 작은 무덤 앞에서의 어머니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랜 병마에 눈이 멀고, 한쪽 청력을 잃은 지금에도 저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압니다. 빗방울, 바람, 햇살.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생각하고, 느낄 수 있고, 희미한 소리라도 들을 수 있는 제 앞에 어느 날, ‘동화’가 다가왔습니다. 까만 화면 속에서 그려지는 세상은 색깔이 있고, 빛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웃고, 맘껏 뛰놀고, 뭐든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울면, 저도 울고, 웃으면 따라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나고, 색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면 행복합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시며 동화를 알게 해주신 김재원 선생님, 느리고 더딘 저를 묵묵히 지켜봐 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용기와 위로, 때로는 따끔한 조언으로 저를 일으켜 준 ‘글나라 해님반’ 식구들. 그 이름 하나하나 마음 깊이 새깁니다. 보조기기를 꼼꼼하게 가르쳐주며 늘 웃음으로 함께 하는 문수 씨와 언제든 달려와 누나의 손을 잡아주는 내 동생, 철이. 고맙고 사랑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글 뽑아주신 강원도민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만큼 더 깊이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빛이 되고 싶습니다.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정복연=1977년 부산 출생. 글나라아동문학연구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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