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신인문학상] 심사평 (3개부문)

김진형 2023. 10.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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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월(왼쪽)·한수산 작가가 제29회 김유정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심사를 하고 있다.

■ 소설“이야기 장악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서사의 힘”

올해 김유정 신인문학상의 최종심은 사실 심사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어째서 ‘메리와 광복절’이 당선작이 될 수밖에 없는지 확인해보기 위한 자리에 더 가까웠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확신은 전적인 것이었다.

1974년 광복절 아침의 텔레비전 뉴스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되는 ‘메리와 광복절’은 ‘기억’과 ‘관계’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적지 않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면밀한 구성으로 그들 각각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그 사이의 갈등을 설득력 있게 부각시켰다는 점, 중심 서사를 설명하지 않고 장면화함으로써 보여주는 솜씨가 탁월한데 문장 또한 나무랄 데 없이 정확하면서도 간결하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무한한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 서사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최근 한국 단편소설의 경향을 생각할 때 처음부터 이야기를 장악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이 작가의 스토리텔링의 힘은 더더욱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미 읽은 작품보다 앞으로 읽을 새 작품이 더 기대된다는 말로 이 지면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상찬을 대신하려 한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한수산·김미월(대표 집필)

▲ 한정영(왼쪽)·홍종의 작가가 동화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 동화“아이답고 자연스러운 심리, 세련된 역량 돋보여”

동화는 아이들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또다른 창이라고 할 수 있다. 교훈, 혹은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은 개별적인 문제이며, 동화가 훈육의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 일부는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한계를 넘지 못하였다.

끝까지 논의된 작품 중에서, ‘천 메가 헤르츠’는 소원을 들어주는 라디오라는 상상력이 눈길을 끌었으나, 주인공의 역할이 없어서 아쉬웠다. ‘앱 친구의 비밀’은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만 결말이 너무 앞쪽부터 드러나서 작위적으로 읽혔다.

‘장마가 끝났다’는 이야기의 초반, 사건의 전개 방식이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지긴 했으나,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이 또래의 아이답고, 거침없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그려진 것이 큰 장점이었다. 장마를 알레고리로 활용한 점이나, 길거리에서 만난 강아지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투사한 시도는 작가의 세련된 역량을 가늠케 했다. 이후에 작가가 더 나은 작품을 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큰 발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홍종의·한정영(집필)

 

▲ 시 부문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고형렬 시인이 이상국 시인과 통화하고 있다.


■ 시“지시적 언어 뛰어넘어 통제 벗어나는 운명 찾아


”‘한여름 노스탤지아 소곡집’, ‘도배사’, ‘팽이처럼, 이라는 말’, ‘새틴 스티치’ 등이 최종심에 올랐다. 우리는 이 중에서 지시적 언어의 영역을 뛰어넘어 음률의 영역으로 나아가다 자기 자리로 돌아온 ‘새틴 스티치’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현대시의 매력은 불명확성에 있기도 하다. 너무 분명한 것에 눈을 맞추지 않고 외면한다. 무언가의 중얼거림은 명증이 아닌 해석 불가한 음악이 되며 통제와 명령에서 벗어나는 운명이 된다. 그것이 기획으로만 되지 않는 “눈을 감아야 잡을 수 있는/시간과 공간의 드로잉”이다. 당선작의 비밀은 손톱의 실금을 만지면 자꾸만 눈이 감기는 오늘 속에서 어제를 훌쩍훌쩍 뛰쳐나간 소녀들과 구름 속에 있다. 지금도 “파닥이는 것들은 너무도 쉽게 현실 속에 갇혀버린다”. 우리에게 갇힌 우리의 다른 생이 이 시 속에는 있다. 화자는 편지 내용보다 뜯어낸 우표의 반쪽만 온 이음새에서 다른 말을 찾으려 한다. 노동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야 하는 시적 의무와 노정은 결코 멈출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둥글게 둥글게 퍼져가”야 하는 타자와 함께 어떤 수를 놓는 ‘새틴 스티치’이다. 이 시는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내재했다. 세상의 모든 소녀의 생애 속에 쏟아지는 오르골 멜로디가 울려 갈라 터진 손톱 끝에서 한 마리 카나리아가 날아오르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상국·고형렬(대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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