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작] 장마가 끝났다- 정 복 연

정복연 2023. 10. 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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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내 손에서 냉큼 별초코바를 가져갔다.
그러고는 돌아서 성큼성큼 걸어 가버렸다.
나는 풋 웃음이 났다.
아저씨는 여전히 성난 표정에다 말투도 무뚝뚝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게 다가 아니란 것을.

시골로 이사를 왔다. 아빠 말대로 공기 하나는 끝내준다. 아토피를 가진 나와 아기를 가진 엄마한테도 딱이다. 그런데 막상 오고 보니 너무 심심하다.

“왜? 진백이는 마음에 안 들어?”

“슈퍼가 너무 멀어. 마을하고도 떨어져 있고.”

내 말에 아빠가 회색 지붕을 가리켰다. 우리 집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이었다.

“진주 할머니 말로는 우리처럼 얼마 전에 이사 왔다더라. 좋은 이웃이 될 거야.”

진주 할머니는 시골을 낯설어하는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그나마 집도 우리랑 가깝다.

“옆집이 있으면 뭐해?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

“그러게. 통 사람을 볼 수가 없네. 인사라도 해야 하는데.”



어느덧 이사를 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또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내 기분도 엉망이었다. 잡았던 아이스크림을 결국 내려놓아야만 했다. 슈퍼에서 집까지 가기도 전에 녹아서 물이 될 게 뻔했다. 후텁지근한 이런 날에 아이스크림조차 내 마음대로 못 먹는다. 거기다 엄마는 스마트폰도 안 사준다. 이사 올 때 잘 챙기지 못한 건 내 잘못이다. 그래도 그렇지 정말 너무 한다. 그때였다. 투투투툭툭 흙탕물이 내게로 날아들었다. 검은 자동차가 옆을 지나가며 물웅덩이를 밟은 거였다. 피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에이 씨!”

청바지가 흙탕물로 엉망이 됐다. 오늘 갈아입은 새 바지다. 앞을 쏘아보았다. 날 이 꼴로 만든 자동차는 마치 달아나듯 내달리고 있었다.

“야, 넌 왜 자꾸 따라오는데? 저리 안 가?”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아까부터 개 한 마리가 뒤를 졸졸 따라왔다. 작고 꾀죄죄한 개였다. 꼭 초라한 내 신세 같았다.

“이 똥개가. 가, 가라고.”

나는 돌멩이를 주워 똥개한테 던졌다. 똥개가 날 빤히 쳐다만 보았다. 내가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어쭈? 안 그래도 짜증 나서 죽겠는데.”

땅바닥에서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똥개에게 휘둘렀다. 바로 그때였다.

“이 녀석!”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성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헉!’

어마어마한 덩치에 절로 내 눈이 커졌다.

“너, 왜 개를 괴롭히는 거냐?”

어마어마한 덩치 아저씨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탁했다. 싸움이라도 했는지 이마와 한쪽 눈이 멍으로 파랬다. 검은 가방을 든 손은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 아저씨가 한발 다가왔다. 나는 움찔 뒤로 물러섰다.

“이 똥개가 자꾸 날 따라오잖아요.”

아저씨가 무서웠지만 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이 길이 네 꺼냐?”

“…….”

할 말이 없었다. 똥개가 그것 보라는 듯 유유히 내 앞을 지나갔다.

“또 그러면 혼날 줄 알아. 명심해라.”

아저씨가 눈에 힘을 주었다. 옆으로 쭉 찢어진 눈이 더 찢어졌다.

“…….”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아저씨가 뒤돌아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바로 우리 옆집으로 말이다. 하필 옆집 아저씨였던 거다. 다음 순간 내 눈이 확 커졌다. 내게 흙탕물 테러를 한 그 검은 자동차가 옆집 대문 앞에 떡하니 서 있는 거였다.

나는 잠시 옆집을 노려보다 주위를 쓱 살폈다. 그러고는 발로 자동차 바퀴를 냅다 차버렸다.

“깡패!”

성난 얼굴에 무뚝뚝한 말투, 상처 난 얼굴과 손. 아저씨는 깡패다. 깡패가 분명하다. 옆집에 깡패가 살다니, 절대 마주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이었다. 아이스크림 대신 콜라를 사 들고 집으로 오는데 옆집 대문이 벌컥 열렸다. 검은 가방을 든 아저씨가 나왔다. 잠깐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피하기에는 늦어버렸다.

“너, 이제 개 안 괴롭히냐?”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안 괴롭혀요. 그땐…….”

내가 더 말하려는데 아저씨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아저씨가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냉큼 차에 올라탔다.

“뭐야?”

어이가 없었다. 멀어져가는 자동차 꽁무니에다 나는 힘껏 주먹 감자를 날렸다.

“진백이 오나? 친구들 카는 사이좋게 지내나?”

씩씩대며 집으로 들어섰다. 마루에서 진주 할머니와 엄마가 수박을 먹고 있었다.

“네.”

“뭐라꼬?”

할머니가 보청기를 빼먹은 모양이다. 내가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사이좋게 지낸다고요!”

그제야 할머니가 웃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할머니 눈이 반짝거렸다.

“새댁, 그 얘기 들었나?”

“뭐요?”

“요 옆집이 마누라 도망가서 찾아댕긴다 카대.”

할머니가 옆집을 흘겨봤다. 어쩐지 아저씨는 볼 때마다 바쁘더라니, 그런 거였다.

“이사를 왔으믄 어른들한테 찾아와서 먼저 인사 해야제, 찾아오지도 않고. 낯짝은 또 고게 뭐꼬? 어데서 싸움질이라도 했는 갑제? 수상하데이. 아무래도 깡패 같데이.”

우리 아빠는 이사 오자마자 집마다 찾아다니며 인사했는데. 진주 할머니도 나처럼 아저씨가 깡패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깡패가 맞는 거다.

“그건 그렇고 진백이 동생은 은제 나오노? 배가 마이 불렀는데.”

엄마가 맞장구를 쳐주지 않자 할머니가 슬며시 다른 말을 했다.

“한 달 정도 남았어요.”

“뭐라?”

“나오려면 조금 남았다고요!”

엄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낯빛이 안 좋았다. 피곤해 보였다.

“진백이도 왔응께 일어나야제. 올 장마는 와 이리 비가 마이 오노. 에고, 징글맞데이.”

할머니가 간 뒤 나도 수박을 먹으려는데 엄마가 빨간 지갑을 불쑥 들어 보였다.

“진주 할머니가 놓고 가셨네. 진백아, 가져다드리고 와.”

가기 싫었다. 귀찮았다. 곧 비도 올 거다.

“싫어, 안 가.”

“비 오기 전에 갔다 와. 얼른.”

엄마가 지갑을 내밀었다. 순간 화가 불뚝 솟았다.

“엄만 왜 맨날 심부름만 시키는데? 스마트폰도 안 사주면서.”

엄마 눈썹이 뾰족해졌다. 아차, 싶었지만 나도 지지 않았다.

“당분간 엄마 꺼 써. 할아버지 병원비에, 곧 동생도 태어날 거야. 돈 들어갈 데가 많아. 다음에…….”

“다음에 언제? 맨날 당분간, 다음에. 약속했잖아? 이번 달에 사준다고.”

엄마 껀 거저 줘도 싫다. 충전도 됐다 안 됐다 하는 불량 전화기를 쓰란다.

“나도 이제 엄마랑 약속 같은 거 안 해!”

엄마 손에서 지갑을 낚아채듯 빼앗아 집을 뛰쳐나와 버렸다.

진주 할머니 집을 나와 집으로 가는 대신 터덜터덜 슈퍼로 내려왔다. 별초코바를 사서 먹으려는데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 가기 싫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지갑 가져다드리고 왔어.”

닫힌 안방 문 앞에서 불퉁하게 말했다.

“그래. 아빠, 퇴근하면 바로 할아버지한테 가신대.”

할아버지는 병원에 계신다. 주말마다 아빠가 할아버지를 보러 간다.

“진백아, 엄마 좀 쉴게.”

“…….”

엄마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아빠가 엄마 스트레스받으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신경질을 낸 게 미안했다. 아니다. 약속을 안 지킨 엄마가 나빴다.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눈앞에 새 스마트폰이 반짝반짝 떠올랐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창을 때리는 요란한 빗소리에 눈을 떴다. 밖은 캄캄해져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만 하얗게 보였다.

거실로 나왔다.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거세게 퍼붓는 빗소리만 들렸다.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 배고파……. 엄마!”

엄마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끙끙 앓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아파?”

엄마 어깨를 흔들었다.

“진, 진백아. 119 불러. 얼른.”

빗소리에 엄마 말이 잘 안 들렸다.

“119.”

“으응. 알았어.”

나는 엄마 화장대에 있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런데 꺼져있다. 충전이 안 된 거다.

“엄마, 전화기가 안 돼. 안 켜져.”

내가 울먹였다.

“진, 진주 할머니한테 가. 어서.”

엄마가 힘겹게 말했다. 엄마 얼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빨리 갔다 올게. 조금만 참아.”

마당을 본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언제 비가 이렇게 내렸을까? 마당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웅덩이가 빗물로 무섭게 불어나고 있었다.

나는 바지를 둥둥 걷어 올렸다. 진주 할머니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종아리를 휘감는 물줄기에 몸이 휘청했다. 바람에 우산이 휙 꺾였다. 곧바로 빗줄기가 온몸을 때렸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집은 불이 꺼져있었다. 벌써 주무시는 걸까? 나는 주먹으로 대문을 쾅쾅 내리쳤다. 등줄기로 빗물과 땀이 연신 흘러내렸다.

“할머니! 할머니!”

하지만 대문은 꿈쩍도 안 한다. 맞다. 할머니는 귀가 어둡다. 어떡하지? 눈앞이 아찔했다. 하는 수 없다. 엄마를 데리고 마을이 있는 큰길까지 가는 수밖에는. 뒤돌아 집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엄마, 날 꼭 잡아.”

마당의 물은 더 불어나 있었다. 나는 엄마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엄마도 나를 부둥켜안았다. 빗소리와 엄마 신음 소리가 어지럽게 귓바퀴를 돌았다.

엄마와 나는 서로를 의지한 채 길가로 나왔다.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비는 멈추지 않고 내렸다.

“엄마, 조금만 참아, 조금만.”

엄마는 거친 숨만 토해냈다. 시큼한 냄새가 났다.

“앗!”

엄마가 발을 헛디뎠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내가 힘주어 엄마 허리를 부여잡았다.

“진백아.”

엄마가 풀썩 주저앉았다.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엄마 옷자락이 빗물에 잠겨 넘실거렸다.

“안 돼. 일어나.”

내가 엄마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힘껏 일으켰다. 엄마가 간신히 일어났다. 그런데 내가 그만 미끄러졌다. 빗물이 한꺼번에 입으로 들어왔다. 잠깐 머리가 멍했다.

“진백아!”

엄마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본 건 바로 그때였다. 세찬 빗줄기에 노란 불빛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불빛이 점점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동차가 엄마와 내 앞에 멈췄다. 차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튕기듯 밖으로 나왔다.

“거기 가만히 계세요!”

옆집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엄마를 안고 차 뒷좌석에 안전하게 태웠다.

“뭐해? 어서 일어나!”

아저씨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크고 단단했다. 나는 붕대가 감긴 아저씨 손을 잡고 우뚝 일어섰다.

“아주머니, 조금만 참으세요.”

아저씨 눈빛이 단단했다.

“너, 이름이 뭐냐?”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

“정신 차려! 이름이 뭐냐니까?”

아저씨가 큰소리로 날 다시 불렀다. 그제야 나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진백이요, 양진백이요.”

“양진백! 거기 검은 가방 보이지? 담요 찾아서 엄마께 덮어 드려. 어서.”

나는 발치에 놓여있는 검은 가방을 열었다. 아저씨가 늘 들고 다니던 그 가방이었다. 사실 궁금했다. 가방에 뭐가 들어있는지. 영화에서 봤던 깡패들 무기인 망치나 칼 뭐 이런 게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가방 안에는 담요와 다양한 크기의 옷가지들이 차곡차곡 개켜져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물건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였다. 아저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 여보. 나, 다시 찬우 병원으로 가고 있어. 가서 얘기할게.”

여보? 도망갔다더니. 아닌가?

“찬우는 어때? 별초코바? 아빠가 사준다고 그래.”

찬우? 아저씨 아들인가? 별초코바는 나도 좋아하는데.

“찬우 병간호하는 당신이 힘들지. 나야, 가벼운 접촉 사고인데 뭐. 여보, 운전 중이라서. 가서 얘기하자고.”

핸들을 움켜잡고 있는 아저씨 손에 자꾸만 눈이 갔다. 거센 빗줄기가 멈추지 않고 차창을 때렸다.



엄마가 아기를 낳고 며칠이 흘렀다. 엄마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 아기는 여동생인데 아빠는 이쁘다고 하지만 솔직히 못생겼다.

병원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고 엄마 병실로 가려는데 저만치 옆집 아저씨가 보였다. 덩치가 큰 아저씨는 사람들 속에서 금방 눈에 띄었다. 그날, 아빠가 올 때까지 아저씨가 내 곁에 있어 주었다.

“아저씨!”

내가 뛰어가 아저씨 손을 잡았다. 여전히 하얀 붕대가 감겨있었다. 아저씨가 천천히 돌아보았다. 짙은 눈썹 사이에 깊게 주름이 패었다.

“뭐냐?”

아저씨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멍이 든 이마가 움찔했다.

“이거, 이거요. 찬우가 좋아한다고 해서.”

나는 머뭇거리다 별초코바를 내밀었다. 아저씨가 물끄러미 나와 별초코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겨우 한 개냐?”

“네? 아, 네. 다음에…….”

“농담이다.”

아저씨가 내 손에서 냉큼 별초코바를 가져갔다. 그러고는 돌아서 성큼성큼 걸어 가버렸다. 나는 풋 웃음이 났다. 아저씨는 여전히 성난 표정에다 말투도 무뚝뚝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게 다가 아니란 것을. 아저씨가 우리 옆집이어서 참 좋다.

멀어져가는 아저씨 머리 위로 눈 부신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장마가 끝이 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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