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호의플랫폼정부] 정책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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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에스모글루와 로빈슨은 흥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차이는 정책(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갈파했다.
그런 방법의 하나가 바로 시범사업과 같은 정책 실험이며 우리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정책 실험의 주체는 반드시 중앙정부만이 될 필요가 없다.
정부가 정책 실험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정책 실패에 따른 기회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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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사업의 기준은 행정의 시급성
정책 실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 문제가 갈수록 더욱 복잡하고 다면적이라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다. 정치적으로 위험부담이 크거나 대규모 비용이 발생하는 정부 정책을 설익은 채로 무턱대고 추진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정책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므로 그런 가설이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가능하다면 먼저 확인하는 것은 정책입안자의 기본 책무이다.
대규모 집행 전에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나 접근의 효과성을 판단하기 위한 체계적인 테스트가 정책 실험이다. 시간, 대상 집단 또는 지역적으로 한정된 소규모 시범사업과 같은 정책 실험을 통해 그렇지 않으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정부가 사전에 인지하여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정책 실험은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거나 창의적인 정책 대안을 발굴하고 시도해보려는 혁신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정부와 여당이 유아교육·보육 통합(유보통합)의 관리체계를 교육부로 일원화하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시범적으로 유보통합 선도교육청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국적 정책 확대 이전에 시범사업을 통해 정책의 효과와 추진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을 파악하려는 의도가 좋다. 얼마 전에 경찰청이 성급하게 스쿨존 속도제한을 일괄적으로 상향한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8개 지역을 시범적으로 우선 시행한다고 번복한 것은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
정책 실험의 주체는 반드시 중앙정부만이 될 필요가 없다. 광주경찰청의 경우, 도심 교차로 우회전 전용 신호등을 3개월 시범 운영하였으나 특정 조건에서는 보행자가 없는데도 오히려 교통체증만 유발하는 부작용이 발생하여 철거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개선 노력이 바로 시범사업을 하는 이유이다.
정부가 정책 실험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정책 실패에 따른 기회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다만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챙겨볼 사항이 있다. 먼저, 모든 정책이나 사업에 무조건 정책 실험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정책 비용과 행정의 시급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일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정책의 경우 의무적인 실시도 고려해볼 만하다. 예컨대, 과거 정부 시절에 활용한 정책품질관리제도의 적용기준 등은 참고가 될 수 있다. 둘째로, 시범사업을 통한 정책 실험에 대한 지역주민, 대상 집단 또는 정치인들의 반대를 예상해야 한다. 과정의 투명성과 원활한 의사소통 확보를 통해 오해와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끝으로, 시범사업 자체가 소규모 실험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확산 적용하기 전에 체계적인 정책평가설계를 한 후, 정책 실험의 결과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원하는 결과만을 활용하는 선택적 정보 활용은 사실관계의 조작과 왜곡을 초래하고, 광범위한 정책추진과정에서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가져오고 저항을 일으키는 독이 될 수 있다.
정책 실험은 작은 규모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해보고 장단점을 사전에 파악하여 정책을 보완하고 추진하는 융통성 있는 정책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과정의 축적을 통해 우리 정부가 더욱 깨어있는 혁신지향적인 모습으로 변하길 기대한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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