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아내 두고 테니스 치러 간 남편…딸들은 "엄마가 유일한 증거"

법원, 남편 구속영장 기각
뇌사 상태 피해자 갈 곳 없어
자녀 "경찰 엄정 수사" 촉구

5월 9일 인천 강화군 자택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된 A씨. 당시 구급대원이 A씨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A씨 자녀 제공

집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내를 두고 테니스를 치러 간 60대 남성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딸들이 "혼수상태인 엄마가 유일한 증거"라며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건 이후 의식을 되찾지 못한 피해자는 장기 입원 중이지만 이달 말 강제 퇴원당할 위기에 처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A(57)씨는 지난 5월 9일 오후 6시쯤 인천 강화군 자택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됐다. A씨의 딸은 의붓아버지인 B씨로부터 A씨가 쓰러져 있다는 연락을 받고 119에 신고했다. B씨는 당시 테니스를 치기 위해 집에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가 쓰러진 아내를 보고 응급조치는 하지 않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낸 뒤 테니스를 치러 나갔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전에도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적이 있어 아내 하고 그런 일로 더 엮이기 싫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지난달 말 유기 혐의로 B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5월 9일 인천 강화군 자택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된 A씨가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A씨 자녀 제공

A씨의 딸은 수사가 지연되면서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A씨의 딸은 4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폭행에 의한 외상 가능성이 있다는 병원 진단을 받았다"라며 "B씨가 아니라면 외부 침입에 따른 폭행 가능성이 높은데도, 경찰이 초기에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아 증거가 사라졌다"라고 지적했다.

사건 직후 A씨의 딸이 찾은 집 곳곳에는 A씨의 혈흔이 있었다. A씨 몸에도 목과 쇄골, 옆구리, 종아리 등 온몸에 멍이 발견됐다. 집 안 가구들도 망가져 있었다. 딸은 "외부 침입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했지만,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 등 현장 증거를 수집하지 않았다"라며 "유일하게 남은 증거는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뇌사 상태인 A씨가 병원 치료를 계속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인천의 한 병원에 있던 A씨는 지난달 서울 여의도 소재 1급 대형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상급 병원에 입원 가능한 기간은 최대 6주. 이달 말이면 퇴원해야 한다. A씨의 딸은 "수십 곳의 병원에 전원 문의를 했지만, 뇌사 상태의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단 한 곳도 없었다"라며 "정부에서 운영하는 범죄피해자보호센터도 범죄가 입증이 돼야 치료비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어, 현재로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건을 맡은 인천 강화경찰서는 B씨를 유기 혐의로 10일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폭행을 한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A씨에 대한 의료기관 소견서 등을 통해 검찰이 유기치상 혐의로 기소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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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