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우체통’ 본떠 58억 들인 우체국…늦어도 너무 늦었네
광주 남구 ‘시간우체국’, 100년 보관 내세워 관광 명소 구상
유사 사업 전국에 이미 330여곳…“특색 없는 애물단지 우려”
광주광역시 남구가 58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시간우체국’이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시간우체국은 신청자의 편지를 최대 100년까지 보관한 뒤 수취인에게 발송해 주는 역할을 한다. 구도심 활성화와 관광 명소 개발이라는 사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전국에 비슷한 사업들이 많아 ‘특색 없는 사업’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취재를 종합하면 남구는 국비 29억원과 시비 14억5000만원, 구비 14억5000만원 등 총 58억원을 투입해 사직동 174번지 일원(1189㎡)에 시간우체국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남구청장의 공약 중 하나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목조 건물 건립을 목표로 한다. 내년 2월 착공해 2025년 상반기에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남구는 지난해 건립 예정 부지에 있는 빈 빌라를 매입하는 등 보상비로 17억원을 지급했다. 오는 11일부터는 본격 철거작업에 돌입한다.
남구는 시간우체국에 편지 등을 맡기면 건물 내부에 마련된 타임캡슐에서 짧게는 1개월에서 최대 100년까지 보관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신청자가 지정한 날짜에 맞춰 수취인에게 전송한다. 개인정보 열람 동의를 통해 수취인의 주소가 바뀌더라도 변경된 주소로 보내준다. 혹시 모를 화재나 파손 등을 대비한 보험 가입 등도 검토 중이다.
남구는 시간우체국에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 국내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내부 분위기는 전체적으로는 구불구불한 계단 등 실내장식이 아름다워 <해리 포터> 작가인 조앤 롤링이 영감을 얻었다는 포르투갈의 렐루서점을 표방한다.
문제는 시간우체국이 ‘단독 건물’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보관 기간을 제외하면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인천 영종대교 휴게소는 시간우체국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느린 우체통’을 2009년부터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수취인에게 편지를 발송한다. 이곳에 접수되는 편지만 매년 수천통에 달한다.
느린 우체통은 크기와 형태, 발송 기간, 운영 주체 등은 제각각이지만 서울과 부산, 대구, 전남 등 전국 330여곳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광주 지역만 하더라도 서구 광주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과 남구 양림동 등에 설치돼 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유명 관광지에 설치된 느린 우체통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시간우체국이 특색 없는 애물단지 사업으로 전락할까 우려한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지자체가 시간우체국 사업의 경제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사업으로 관광객들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고 끌어모으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구청 관계자는 “시간우체국은 주민협의체를 통한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사업”이라며 “우체국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등 인근 관광 명소와 연계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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