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야 할 이유

기자 2023. 10. 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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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민주공화제의 선도국은 영국이다. 이미 13세기 초부터 흔히 ‘대헌장’으로 번역되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여러 차례 제정해 무소불위처럼 인식되던 국왕의 권한이 제한될 수 있고, 또 제한돼야 함을 확인해 법치주의 또는 적법절차 원리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1215년 제정된 최초의 마그나 카르타에서 국왕이 이 헌장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25명의 귀족으로 구성되는 평의회를 두도록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평의회를 통해 국왕을 통제한다는 발상은 1265년 시몽 드 몽포르가 반란을 일으킨 뒤 소집한 의회를 통해 계승된다. 특히 시몽 드 몽포르의 의회는 귀족뿐만 아니라 주요 도시의 평민 대표들도 참여하게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영국 하원인 평민원의 기원으로 평가된다.

시몽 드 몽포르의 반란을 진압한 헨리 3세는 과세권의 편의를 위해 평민 대표도 참여하는 의회를 계속 활용했고, 그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1세가 각 지역 단위로 귀족과 평민 대표를 소집하는 체계를 정립해 ‘모범의회(Model Parliament)’의 명칭을 받게 됐다. 이후 1688년 스튜어트 왕가의 절대왕정을 종식하고 국왕과 귀족원, 평민원이 삼위일체가 되는 계급연합형 의회가 주권을 갖도록 하는 명예혁명을 통해 영국은 근대 민주공화제의 초석을 마련한다.

흔히 영국헌정을 입헌군주국으로 분류하지만 그 실질은 민주공화제이다. 국왕은 ‘의회 속의 국왕(Crown-in-Parliament)’이란 주권체의 일부로서 국가원수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평민원과 귀족원이 입법권을 가지며, 행정권은 보통선거 원칙에 따라 구성되는 평민원의 다수파를 중심으로 내각이 꾸려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헌정에서 주목할 것은 행정권을 가지는 평민원에서 집권정파가 주도하는 내각을 ‘국왕의 정부’라고 부르고, 평민원의 야당을 ‘국왕의 야당’으로 지칭한다는 점이다. 정부나 야당이나 정치적으로 대립하지만 국민통합의 기치 아래 각자의 헌법적 역할을 수행하는 다원주의적 현실을 헌정에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문헌법 체제인 영국 헌정의 오랜 민주공화적 관행은 성문헌법 체제로 민주공화국을 제1원리로 표방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1년 반이 되도록 한 번도 국회 다수당 대표를 국정의 파트너로서 만나 정치적 협상을 한 적이 없다. 입헌군주제라는 형식적 외피마저도 없는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권을 갖는 정부의 수반으로서 입법권과 국정통제권을 가지는 국회의 교섭단체이자 대중 정당인 여당과 야당의 대표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국민을 위한 국정의 원활한 운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회 다수당의 대표는 단순히 여당의 파트너만이 아니라 정부를 책임지는 대통령의 파트너이기도 한 것이다.

혹여 권위주의 시대의 발상으로 행정이나 통치의 중립성을 내세워 정치나 야당 대표와의 국정협의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는 민주공화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아 국정을 위임받아 입법부와 사법부 등 다른 국가권력과 공화적 관계에서 주어진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므로 애당초 정치로부터 초월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된다. 국민이나 주요 정당과 유리된 대통령을 공약을 내걸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국민이 직접 뽑을 이유가 없다.

집권 여당에선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의 회동이나 협의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야당 대표의 방탄용이라는 인식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같은 인신의 자유와 관련한 헌법상 논거를 들먹일 것도 없이 국정농단 등으로 이미 유죄가 확정된 전직 대통령 등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사법적 단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사면한 처사와 모순되고, 정략적인 동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검찰 중심의 공안통치로 국내외의 산적한 현안을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지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윤석열 대통령은 헤아릴 필요가 있다. ‘국민의 대통령’으로 ‘국민의 정부와 여당’은 물론 ‘국민의 야당’과도 경쟁할 때는 치열하게 하더라도 민생을 위해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과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총선 결과에 관계없이 또 다른 대치정국을 초래할 것이다. 그 때문에 초래될 민생에서의 고통과 정치불신은 야당은 물론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윤 대통령에게 국민의 준엄한 심판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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