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추석, 긴 여운
고향 가는 길의 김천 직지사. 압도적인 대웅전 부처님 때문이다. 절에서는 사람들 뒷모습이 주로 눈에 들어온다. 함께 나들이 온 일가족인 듯 엄마와 아들과 딸이 앞에서 손잡고 걷고 아빠와 할머니가 뒤를 따른다. 지금의 나는 앙상하지만 나도 저런 풍경에 담긴 적이 있었다. 몇년 전의 우리집하고 꼭 같은 모습의 실루엣은 여러 봉우리가 이어진 산줄기 같다. 저 단란한 골짜기 사이로도 일어나야 하는 일은 들이닥친다. 멀리 있는 별이야 항상 반짝거리면 그만이지만 가까이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이 끈끈한 가족들도 언젠가는 서로 울면서 행성처럼 흩어져야 하는 것. 왜 구불구불 국도까지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는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적어도 불행한 가정은 없는 것 같다. 긴 연휴를 각자의 방식대로 보내는 귀성객과 성묘객과 여행객들. 그 누구든 지루한 집을 떠났다는 홀가분한 기분을 감추지 않는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후련한 표정으로 각종 먹을거리를 든 채 섞이고 어긋난다. 가족을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높다. 왜 휴게소에서는 주로 앞모습이 눈에 걸리는가.
달맞이하러 온 인왕산. 내 동무들과 가는 아지트가 있다. 남산이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반반한 바위. 저무는 저녁이라 자리 쟁탈할 걱정도 없다. 이윽고 떠오르는 대보름달. 보름과 초승이야 구분해도 달의 앞뒤를 재는 건 무망한 일이다. 산은 앉은키가 곧 제 키다. 어둠 속에서도 신독의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 산. 겨드랑이마다 꽃과 새와 돌을 거두는 인왕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내려왔다.
그리고 긴 연휴 끝나 엘리베이터 앞이다. 네모 속의 생활은 다들 비슷하고, 출근 동작들도 같은 시간대에 몰린다. 사막 같은 공간에는 위층의 이웃들이 이미 여럿이다. 나도 한 그루 선인장처럼 잠시 발목을 묻는다. 빽빽한 곳에서는 주로 귀가 보이더니 일층을 지나고 지하로 가면서 서 있는 이의 발등까지 드러난다. 비로소 숨도 한번 크게 내쉰다. 사람의 호흡은 불행처럼 저마다 조금씩 다른 것. 정수리의 숨구멍이 닫힌 이후 주로 입이나 코를 이용한다. 더러 한숨이 거들기도 하고, 드물게 배꼽 아래 단전호흡. 그중에 어떤 재가수행자는 무릎 저 아래로 숨 쉬는 이도 있다고 한다. 오늘 나는 보았다. 누군가 한 발짝 앞선 이의 저 유난히 환한 발뒤꿈치!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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