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운칠복삼’ 한덕수의 승부수

김석 기자 2023. 10. 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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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복삼(運七福三)’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2005년 여름 무렵이다. 같은 경제부처를 출입했던 다른 언론사 기자가 내게 “운칠복삼이라는 말을 들어봤느냐”고 물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운칠복삼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한덕수 총리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그가 경제부총리에 오른 뒤 재정경제부 관료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돌고 있다는 게 그 기자의 얘기였다. 경제부총리가 된 이유가 운과 복이 전부라니. 아마 자신들이 경제관료 중 엘리트라고 생각하던 다른 경제부처 출신 관료들이 주로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경력을 쌓은 한 총리를 질시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전북 전주 출신인 한 총리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관세청·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가 유학을 떠나 1984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무 외에 경제이론과 영어 실력을 고루 갖출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후 상공부에서 경력을 쌓은 한 총리는 특히 통상 분야에서 줄곧 선두 주자였다. 김영삼 정부에서 특허청장과 통상산업부 차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이 됐다.

지금 와서 보면 운도 좋았다.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2002년 7월 한·중 마늘 협상 파문 때문에 경질됐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 산업연구원장, 국무조정실장을 거쳐 경제부총리에 올랐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그를 경제부총리로 발탁한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인연으로 2007년 4월부터 노무현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명박 정부 때는 2009년 2월부터 3년 동안 주미 대사를 지냈다. 2011년 미국 의회에서 한·미 FTA가 비준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영을 넘나들며 경제·통상 관료로 중용된 그는 ‘강단이 없다’ ‘무색무취하다’는 다소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이다. 반면 부드러움이 장점이라는 호평도 있다. 지금처럼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는 상황에서 다리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그의 국회 인준안을 ‘찬성 당론’으로 통과시켜준 배경에는 그런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한 총리가 얼마 전부터 ‘싸움닭’처럼 변했다. 국회 답변에서 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순직 해병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질의에는 “의원님 말씀은 다 틀렸다”며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일본 도쿄전력의 오염수 방류에 대한 질의에는 ‘가짜뉴스’ ‘선동’ 같은 단어를 동원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로부터 “국회에 싸우러 나왔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좋은 느낌을 갖기는 어려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여러분들은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계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한 총리까지 말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이미 십수년 전에 한 차례 총리를 지낸 70대 중반의 한 총리라면 나라의 어른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마땅하다.

정치에 입문한 지 몇달 만에 당선된 윤 대통령은 ‘경제 문외한’이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그는 외국에 나가 ‘통 크게 양보’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실익을 챙긴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통상 전문가인 한 총리가 도와줄 일이 많아 보인다.

한국 경제는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3고 리스크’가 불거지며 하반기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상저하고’ 기대는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정부·기업·가계 할 것 없이 빚은 늘어만 가고, 월급만 빼고 모든 것이 올라 서민들 삶은 팍팍해져가고 있다. 비상한 각오로 민생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국정을 운영해야 할 시기다. 1970년대부터 여러 경제위기 상황을 경험한 한 총리가 경륜을 발휘할 때다. 그럼에도 한 총리의 존재감은 온데간데없다.

한국 경제를 수렁에서 건져내려면 거대 야당의 협조를 얻어야 할 때가 많을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지금 정부·여당에는 없다. 싸움닭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한 명이면 충분하다. 한 총리에게 지금의 자리는 마지막 공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운’과 ‘복’이 아닌 능력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를 살리는 ‘구원투수’가 돼주길 기대한다.

김석 경제에디터

김석 경제에디터 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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