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송편을 데우며

기자 2023. 10. 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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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에 들기름을 살짝 두르고 냉장고에서 송편을 다섯 개만 꺼내서 겉면이 바삭해질 때까지 아주 약한 불에 굽는다. 달콤한 밤 송편만 골라 먹으면 좋겠지만, 들기름 향이 입혀지면 평소 싫어하던 콩 송편조차도 썩 맛있게 느껴진다. 긴 추석 연휴 동안 하루에 다섯 개씩 꺼내 먹어도 아직 냉장실에는 엄마가 넉넉히 싸주신 송편이 남아 있다.

이뿐만 아니다. 냉동실에는 메밀배추전과 동태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전 귀신’인 나는 한동안 신나게 냉장고를 파먹으면서 추석의 여운을 즐길 것이다. 단 한 조각의 전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냉장고에 가득 채운 추석 음식을 버리지 않고 알뜰히 먹는 것은 단지 내가 ‘전 귀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음식을 버리지 않는다. 반찬통에 조금 남은 반찬을 볶아 먹고, 남은 양념까지도 찌개에 넣어서 보글보글 끓인다.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과일 껍질이 대부분이다. 식당에 가서도 반찬이 너무 많다 싶으면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사장님께 미리 몇 가지를 빼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채식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음식을 남기는 상황이 되면 고기를 먹기도 한다.

어려서는 농부가 정성으로 키운 귀한 음식이라고 배웠고, 좀 더 크고 나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처리 곤란이라고 배워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물다양성을 고민할수록 생각이 복잡해졌다. 생물다양성 붕괴의 과정은 결국 인류가 다른 동물들의 서식지와 토지 이용에서 경쟁해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생물다양성이 가장 취약해진 곳은 다름 아닌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의 열대 우림이다. 아마존 열대 우림에서는 숲을 훼손해서 소를 키우고 사료 작물을 키운다. 소고기는 전 세계로 팔려나가 햄버거 패티가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숲에 불을 질러서 팜 농장을 만든다. 팜유는 라면을 바삭하게 튀겨낼 것이다. 나의 밥상이 열대 우림 파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유럽연합이 2030 생물다양성 전략 목표에서 농경지의 일부를 생태적으로 복원하고, 농약 사용을 대폭 감소시키는 등 농업 관련 목표를 다수 채택하기도 했는데, 유럽의 자연복원법 제정 과정에서 농업 부문의 반발이 상당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은 농업 전환이라는 웅장한 고민은 고사하고 당장 오늘 점심에 라면을 포기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서는 음식물 쓰레기의 절반을 줄이는 목표를 채택했다. 남은 음식을 억지로 먹을 것까지는 아니지만 기왕이면 남기지 않을 만큼만 차리고, 차린 음식은 남기지 않고 먹도록 노력해야 하며, 식자재나 음식이 버려지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격한 비건이 되거나 라면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해볼 만한 도전이지만, 전 세계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이나 줄이는 것도 만만한 목표는 아니다.

전 세계가 어떻게 줄일지는 막막하지만 나는 일단 할 수 있는 실천을 한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내 삶을 바꾼다는 것이 무엇 하나 쉽지 않다. 송편을 데우면서 뭔 잡념이 그리 많냐고 잔소리할 얼굴들이 떠오르지만, 이건 내 나름의 진지한 실천이다. 기왕이면 더 즐거운 실천을 위해서 냉장고에 막걸리도 채워야겠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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