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의 21세기 진보] 색출하면 패배하고, 혁신하면 승리한다

기자 2023. 10. 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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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진박 감별 성공했지만
2016년 총선에서 참담한 패배
이재명, 내부 투쟁선 완승했지만
총선서 패배하면 정치인생 위기
총선 이겨 사법 리스크 줄이려면
약점 보완 통한 혁신이 필수다

법원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방탄 논란’은 일단락됐다. 불체포특권 포기는 이재명 대표의 대선공약이었다. 김은경 혁신위원회의 대국민 1호 약속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약속했던 사안이다. 가결파의 논거는 두 가지였다. 하나,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한다. 둘, ‘방탄 민주당’ 이미지는 총선에서도 악재가 된다. 가결파의 논리도 일리 있는 것이었다.

부결파 논리도 일리가 있었다.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탄압으로 봤다. 검찰은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수사를 2년째 하고 있다. 오죽하면 검사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이 9월8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정권교체 후 지난 1년 동안 이재명 비리 수사만 정치의 중심이 되고 (…) 이러다가 정권 내내 이재명 대표 비리수사로 끝날 수도 있겠다”라고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겠는가.

역시 정치는 생물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승부수를 던졌다. 단식이었다. 논리적 불리함을 정치적 승부수로 돌파를 시도했다. 체포동의안은 9월21일에 국회 표결이 이뤄졌다. 한국갤럽은 9월19~21일 3일간 체포동의안 여론조사를 했다.

전체 국민으로 보면, 정당한 수사절차 46%, 부당한 정치탄압 37%였다. 중도층의 경우 정당한 수사절차 45%, 부당한 정치탄압 40%였다. 흥미로운 것은 민주당 지지층 여론이다. 정당한 수사절차 17%, 부당한 정치탄압 72%였다. 국민 전체 여론으로는 여전히 윤석열 정부와 검찰의 논리가 먹히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층은 ‘부당한 정치탄압’ 여론이 72%에 달했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재명 대표는 세 가지를 얻게 됐다. 첫째, 당분간은 구속 위협에서 벗어났다. 둘째, 방탄 논란에서도 벗어났다. 셋째, 당내 권력투쟁에서 완승했다.

정치는 원래 절반은 내부 권력투쟁이고, 절반은 외부 권력투쟁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한 진리다. 매파가 있으면 비둘기파가 있고, 강경파가 있으면 온건파가 있고, 주전(主戰)파가 있으면 주화(主和)파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정상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표는 검찰과의 싸움에서 일시적인 판정승을 거뒀다. 비명계와의 내부 권력투쟁에서는 완승했다.

정당은 사회운동 단체와 다른 고유의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정당은 시민단체보다 역동적이다. 정당은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 KPI)가 분명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핵심성과지표(KPI)는 무엇인가? 선거 승리다. 당장은 2024년 총선이다. 당장은 다수파여도 선거에서 패배하면 소수파로 전락한다. 정당의 매력이다.

민주당 일각에서 ‘가결파 색출론’이 나온다. 색출, 자수, 척결…. 싸움박질을 업으로 하는 정치권에서도 자주 나오는 표현들은 아니다. 체포동의안 논란이 감정적으로도 격렬했음을 방증하는 것이지만, 부적절한 용어들이다.

한국정치사에서 보수정당 계열이 ‘색출’을 실제로 했던 전례가 있긴 하다. 공천에서 배제하기 위한 색출이었다. 2016년 4월 총선을 앞둔, 당시 새누리당의 ‘진박(眞朴) 감별’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새누리당 다수파는 참된 진박을 감별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진박, 찐박, 참박 등의 기발한 단어들이 등장했다. 새누리당 다수파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반역자들을 색출하고, 처단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부산 영도다리로 잠적하는 저항을 했지만, 색출과 처단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16년 4월 총선 공천을 앞두고, 새누리당 친박 세력은 색출과 진박 감별에 성공했다. 그리고 참패했다. 궁극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것도 2016년 총선 때 ‘색출’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정치도 새옹지마, 색출도 새옹지마다.

2027년 대선까지를 봐야 하는 이재명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성과지표(KPI)는 총선 승리다. 총선 승리가 대선에도 도움이 되고, 사법 리스크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총선 승리는 어떻게 가능한가? 1987년 이후 9번의 총선, 8번의 대선이 있었다. 17번 선거 모두를 관통하는 승패의 요인은 무엇일까? 세 가지로 집약된다. ①분열 ②반사이익 ③중도확장이다. 선거에서 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①우리가 분열하고 ②상대방에게 반사이익을 제공하고 ③혁신도 하지 않고, 중도확장도 하지 않는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도 간단하다. ①상대방이 분열하고 ②상대방 실책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③혁신을 통해 중도확장을 하는 것이다.

선거는 상대평가다. 내가 못해도 상대방이 더 못하면 승리한다. 내가 잘해도 상대방이 더 잘하면 패배한다. 상대방 분열과 상대방 실책을 이쪽에서 만들 수는 없다. 이쪽이 할 일은 ①분열하지 않는 것, ②반사이익을 제공하지 않는 것, ③혁신을 통해 중도확장을 하는 것. 세 가지다.

선거는 ‘51% 게임’이다. 진보는 진보+중도연합을 통해, 보수는 보수+중도연합을 통해 51%를 만들면 승리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중도확장의 모범 사례는 2012년 박근혜 비대위와 2016년 문재인 대표가 주도해서 만들었던 김종인 비대위다. 두 번의 비대위는 공통점이 있다. 혁신을 통해 중도확장에 성공했다. 정치에서 혁신 개념의 본질은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총선 승리를 원한다면 약점이 무엇인지 짚어야 한다.

지하철에서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다. 정치에서는 색출하면 패배하고, 혁신하면 승리한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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