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이란 ‘도덕경찰’

구혜영 기자 2023. 10. 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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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16일 이란의 20대 청년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아미니는 그 후 사흘 만에 사망했다. 경찰은 심장발작이 사인이라고 했지만 아미니가 경찰의 지휘봉에 머리를 맞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무슬림 여성의 죽음 뒤엔 ‘도덕경찰’(지도순찰대)이라는 거대한 장막이 있었다.

도덕경찰은 2006년부터 이란 여성의 복장을 규제한 조직이다. 아미니의 사망은 도덕경찰이 이란 여성의 인권 탄압사를 상징하는 기구라는 것을 폭로했다. 1979년 신정일치국가를 만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는다는 건 나체로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다. 1981년 공공장소에서 만 9세 이상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히잡법이 만들어졌고, 이 무렵 히잡 위반을 단속하는 도덕경찰이 세워졌다. 무제한의 체포·구금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도덕경찰의 마구잡이 단속이 아미니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여성들은 분노했다. 이란 전역에서 “나도 아미니다”라는 절규가 쏟아졌고 이 절규는 “여성, 삶, 자유”라는 구호와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여성들의 연대로 이어졌다. 여성들의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됐고, 수많은 시민이 도덕경찰의 폭력진압에 저항했다. 반정부 시위에 놀란 이란 당국은 석 달 만에 도덕경찰을 해체하고 히잡법을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지난 1일 테헤란에서 ‘히잡 복장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구타당한 16세 가라완드가 중태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측은 가라완드가 객차 옆에 머리를 부딪힌 후 기절했다고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히잡을 쓰지 않고 열차에 탄 그를 경찰이 밀쳐 넘어뜨리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해체 선언 10개월 만에 도덕경찰의 악행이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이다. 여성 복장을 규제해 사회 규율을 잡고, 폐쇄적인 신정국가 정치이념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이 히잡 단속이다. 도덕경찰은 자의적인 규정을 폭력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선봉대가 아닐 수 없다. 가라완드의 쾌유를 빈다. 병상에서 일어나 40여년간 히잡 관습을 강요해온 억압과 싸우길, 도덕경찰에 맞서 더 크게 “여성, 삶, 자유”를 외쳐주길 바란다.

인권단체 헹가우가 3일(현지시간) 공개한 영상에서 16세 이란 여성 아르미타 가라완드가 테헤란 지하철에서 부축을 받아 승강장으로 내려오고 있다. 헹가우 홈페이지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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