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춤 백야 ·기적의 빌리·미쳐버린 백조…스크린으로 간 발레
발레가 영화를 만났을 때
고등학생 때 성형외과 의사 꿈꾸던
몬테카를로 수석 무용수 안재용
'백야' 첫 장면에 반해 발레 시작
성장스토리 '빌리 엘리어트'
심리 스릴러 '블랙스완'도
“발레리노가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누나가 놓고 간 영화 ‘백야’ DVD 덕분이었어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활약하고 있는 안재용(30)의 말이다. 그는 ‘인생 영화’로 세계적인 발레 스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한 ‘백야’(1985)를 꼽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성형외과 의사를 꿈꾸던 안재용은 영화 첫 장면부터 나오는 바리시니코프의 춤에 마음을 뺏겨 발레를 시작했다고 했다.
영화는 소련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세계적 발레리노 니콜라이(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롤랑 프티의 안무작 ‘젊은이와 죽음’ 공연에서 독무를 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안재용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춤이다. 이 독무에 국내 한 스포츠용품 CF에서 패러디해 유명해진 ‘의자 춤’이 나온다. 의자 위에 올라선 뒤 등받이를 한 발로 천천히 누르면서 내려오는 장면이다.
해외 투어였던 이 공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던 니콜라이는 비행기 사고를 당한다. 기체 고장으로 시베리아에 불시착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니콜라이는 그를 다시 키로프 극장 무대에 세우려는 KGB의 공작에 맞서 소련을 탈출한다. ‘백야’의 매력은 이런 극적인 드라마보다는 11회전 피루엣(한 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도는 춤 동작) 등 전성기였던 30대 바리시니코프의 우아하고 화려한 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극 중 니콜라이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흑인 탭댄서 레이먼드(그레고리 하인즈)의 경쾌한 탭댄스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라이어널 리치의 ‘세이 유, 세이 미(Say You, Say Me)’가 흐르는 마지막 장면도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발레와 탭댄스가 어우러지는 영화로 ‘빌리 엘리어트’(2000)를 빼놓을 수 없다. 영국 로열 발레단의 무용수 필립 모슬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인 더럼을 배경으로 가난과 편견을 딛고 발레리노가 되길 꿈꾸는 소년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벨)의 성장 이야기를 그린다. 광부인 아버지(게리 루이스)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권투를 배우러 간 빌리는 체육관 옆 공간에서 발레를 배우는 여자아이들의 동작에 빠져든다. 자기도 모르게 여자아이들 틈에 껴서 플리에(양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 등 발레의 기본 동작을 따라 하는 빌리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발레 선생 윌킨스(줄리 월터스)는 그런 빌리의 모습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런던 로열발레학교 입학을 권유하며 오디션을 위한 개인 교습을 자청한다. “발레는 여자들이나 추는 춤”이라며 강하게 반대하는 아버지 앞에서 빌리는 발레에 탭댄스를 가미한 춤을 폭발적으로 선보인다. 재능을 인정한 아버지와 함께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을 보러 간 빌리. 음악이 흐르고, 무의식적으로 자신만의 춤을 춘 빌리는 심사위원들을 또 한번 놀라게 한다. 성인이 된 빌리는 가족을 모두 초대해 공연을 펼친다. 남자 무용수들이 백조들로 등장하는 매슈 본의 ‘백조의 호수’. 주인공 백조로 분한 빌리가 무대에서 힘차게 도약하는 마지막 모습은 잊을 수 없다.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2010)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 등 성장 드라마 같은 발레 소재 영화들과는 결이 다르다. 뉴욕시티발레단이 새로 제작하는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의 1인 2역을 처음으로 맡게 된 발레리나 니나(내털리 포트먼)가 심리적 중압감에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그린 심리 스릴러다.
니나는 리허설에서 순수한 백조 공주 오데트는 완벽에 가깝도록 연기하지만, 관능적이고 탐욕적인 흑조 오딜 연기에선 어딘가 부족함이 보인다. 스스로 백조 못지않게 흑조 역할도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과 발레단 예술감독 토마스(뱅상 카셀)의 압박, 딸의 성공을 바라는 어머니(바버라 허시)의 광적인 집착 등에 심한 부담을 느낀다. 공연이 임박하면서 거울 속에서 헛것이 보일 정도로 광기에 사로잡힌 니나는 자기 자신을 파멸로 몰아간다.
니나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내털리 포트먼의 내면 연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다만 완벽에 집착해 삶을 희생하는 니나의 모습이 과장됐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백조의 호수’ 실연에서 오데트와 오딜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발레리나의 모습이 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더 큰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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