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캔버스 속 '까치·산·나무'…평범한 것들로 만들어낸 변주

성수영 2023. 10. 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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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고작 88개의 건반으로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장욱진 작품에서 느껴지는 경이로운 예술적 매력도 같은 맥락이다.

장욱진 작품의 세 가지 특징을 통해 그 매력을 자세히 풀었다.

장욱진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자신의 작품세계 속에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완전히 융합시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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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작품의 세 가지 특징은
작은 화폭 안에 주제 압축
비슷한 소재 반복해서 쓰지만
다양한 구성으로 색다른 연출
문인화에 학 대신 까치 쓰는 등
고정관념 얽매이지 않고 시도
동·서양 완벽히 융합시킨 화가
위쪽부터 순서대로 ‘나무’ (1986), ‘가족’ (1955), ‘황톳길’ (1989), ‘언덕위의가족’ (1988).


피아노는 고작 88개의 건반으로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장욱진 작품에서 느껴지는 경이로운 예술적 매력도 같은 맥락이다. 장욱진은 까치와 산, 나무와 가족 등 한정된 몇 개의 주제만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작은 작품을 주로 그렸기에 소재들을 변주할 수 있는 여지도 적었다. 그런데도 1000점이 넘는 그의 작품 중에서는 똑같은 그림이 단 한 점도 없다. 장욱진 작품의 세 가지 특징을 통해 그 매력을 자세히 풀었다.

 작은 작품이 품은 큰 아름다움

장욱진에게 그림은 세상의 본질과 아름다움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었다. ‘큰 화면은 싱겁다’는 그의 지론이 여기서 나왔다.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작업실이 좁았기에 장욱진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팔이 닿는 범위 내에서만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림은 작아도 그 안에 품은 아름다움은 결코 작지 않다. 작은 캔버스 안에 여백을 일부러 만드는 등 다양한 조형적 시도를 통해 그림의 밀도감을 더욱 높이고 작품이 크게 느껴지도록 한 덕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와 전시디자이너 김용주 기획관이 1전시실에 장욱진의 작업실을 본뜬 좁고 낮은 공간을 마련하고 일부 작품은 몸을 기울여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한 건 이런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과감한 조형과 구성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에서는 까치를 비롯해 비슷한 소재가 끝없이 반복된다. 그런데도 지루하다는 관객이 없다. 과감한 구성으로 다양한 매력을 연출해낸 장욱진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구도부터가 그렇다. 좌우대칭과 십자는 기본, 왕(王)자에 마름모, 원, 엑스(X)자, 역삼각형, 사선 구도까지 온갖 기상천외한 구도를 사용했는데도 그림이 하나같이 안정적이고 세련되게 아름답다.

전시 2부에 있는 ‘콤포지션’ 코너에서 작품들과 함께 그 안에 숨겨진 구도에 대한 해설을 만날 수 있다. ‘그저 작고 예쁜 작품’이라는 단편적인 인식을 넘어 장욱진이 이룩한 예술적 성취에 감탄하게 되는 곳이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성품이 이를 가능케 했다. 원로 작가 최종태(91)가 장욱진을 스승으로 모시던 시절, 스승의 그림 속 일렬종대로 날아가는 참새를 보고 “참새는 그렇게 날지 않던데요”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내가 시켰지”라는 천연덕스러운 답이 돌아왔다는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문인화풍(文人畵風)의 그림에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학 대신 까치를 쓴 것도, 그림 속 산에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을 낸 것도 장욱진이 처음이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완전한 결합

장욱진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자신의 작품세계 속에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완전히 융합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캔버스와 수묵화 특유의 붓질이 어우러지는 재료 및 기법, 문인화와 민화를 넘나드는 소재, 액자까지 모든 면에서 자유자재로 동양과 서양을 오갔다. 이는 서양화에 동양을 입힌 김환기, 동양화에 서양을 받아들인 이응노, 동양화에 디자인적인 추상성을 입힌 유영국과도 확연히 구별되는 성과다.

전시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 말년의 작품들은 그 결과물이다. 배 학예사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내공이 만들어낸 통달의 경지가 동서양화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가능하게 했다”며 “장욱진 말년 작품의 매력을 알린 게 이번 전시에서 가장 보람찬 점 중 하나”라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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