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70년대 김해·동래부사는 같은 가문 출신이었다

이현동 기자 2023. 10. 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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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1800년대 중후반, 김해부와 동래부(현재의 김해·부산시)를 다스렸던 같은 가문 출신 두 사또의 흔적을 살피고 두사람을 비교 분석한 책이 발간됐다.

김해대학교 사회복지상담과 최학삼 교수가 최근 펴낸 책 '김해에는 정현석, 동래에는 정현덕'에는 정현석 김해부사(1817~1899)와 정현덕 동래부사(1810~1883)에 대한 소개와 업적, 비교 내용 등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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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삼 교수 '김해에는 정현석, 동래에는 정현덕' 발간
두 지방관 주요 업적 및 공통점·차이점 등 비교분석
김해대학교 최학삼 교수가 펴낸 '김해에는 정현석, 동래에는 정현덕' 표지.(최학삼 교수 제공)

(부산=뉴스1) 이현동 기자 =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1800년대 중후반, 김해부와 동래부(현재의 김해·부산시)를 다스렸던 같은 가문 출신 두 사또의 흔적을 살피고 두사람을 비교 분석한 책이 발간됐다.

김해대학교 사회복지상담과 최학삼 교수가 최근 펴낸 책 ‘김해에는 정현석, 동래에는 정현덕’에는 정현석 김해부사(1817~1899)와 정현덕 동래부사(1810~1883)에 대한 소개와 업적, 비교 내용 등이 실려 있다. 부제목이 ‘흥선대원군 집권시기 낙동강 건너 두 명의 초계정씨 사또 이야기’로 두 사람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한다.

책에 따르면 강원도 횡성 출신인 정현석은 1870년 6월부터 1873년 12월까지 김해부사를 지냈다. 이 기간에 △사충단 건립 △봉황대 구축 및 명명 △양사재 중건 △분산성 개축 △현충사 재건 △연자루 중수 등 수많은 문화재를 관리하며 가락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뿐만 아니라 학문 및 산업을 장려하고 국방 강화 정책을 펼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겨 역대 김해부사 중 가장 역사적 업적이 많은 인물로 꼽힌다. 또 원산감리 재임 시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원산학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정현덕은 1867년 6월부터 1874년까지 두 번에 걸쳐 동래부사를 지냈다. 흥선대원군 집권 이후 동래부사가 돼 일본과의 교섭을 담당했는데,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받들어 일본 메이지신정부의 국교재개 교섭을 거부하고 일본과 암거래를 하는 무리를 단속하기도 했다.

약 7년이나 부사로 일했다는 점으로 미뤄 정현덕에 대한 대원군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대일외교의 최일선 담당 외교관으로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주요 업적으로는 △동래읍성 수축 및 공해관 건설 △동래객사(봉래관) 개축 △국청사 중건 △금정산성 동·서문 재건 △태평원·금강원 시비 △세한당 현판 글씨 기록 등이 있다. 부산시는 이를 인정해 2002년 그를 ‘20세기 이전 부산을 빛낸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같은 가문 출신의 두 사람이 각 지역을 다스렸으나, 정현덕 동래부사가 흥선대원군의 충실한 심복(수구보수파)이었던 것과 달리 정현석 김해부사는 온건개화파로 정치색이 정반대였다.

또 정현석은 황해도 관찰에서 물러난 후 1899년 고향에서 자연사했으나 정현덕은 1883년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는 부분도 차이점이다.

최 교수는 책을 쓴 계기에 대해 “2022년 김해 인제대학교 그랜드가야연구포럼에서 ‘정현석 김해부사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한 연구자가 정현석과 정현덕을 혼동해 썼던 글을 지적했다”며 “정현석 김해부사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오류를 확인한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정현덕 동래부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해 책을 펴내게 됐다”고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정현석과 정현덕의 공통점·차이점을 자세히 비교 분석했는데, 아쉽게도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교류를 했다는 자료를 전혀 찾지 못했다”며 “비슷한 시기에 근거리에서 근무한 지방관으로서, 같은 집안의 형님 동생으로서 술잔을 기울이며 여러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관련 자료를 찾아 세상에 선보이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lh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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