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냉기·임상 포기…K바이오의 긴 겨울
해외 기술수출도 반토막
버티기 위해 유증 나서지만
목표 달성 어렵고 주가도 뚝
미래 파이프라인까지 포기
바이오산업 경쟁력 휘청
돈줄이 마른 국내 바이오 업계가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고육지책을 쏟아내고 있다. 유상증자에 나선 바이오 기업이 줄을 잇는 가운데 회사의 미래 성장동력인 신약 파이프라인까지 매각하거나 정리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의 돈 가뭄이 계속되면 K바이오의 신약 개발 경쟁력 자체가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만 메디포스트, 메드팩토, 박셀바이오, 아미코젠 등 바이오·헬스케어 회사가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일부 기업은 1000억원대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과거 바이오 업체의 유상증자는 대규모 연구개발(R&D)이나 임상시험 등 신약 개발 투자와 미래를 위한 것이었던 반면, 지금은 철저히 현재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들 기업은 유상증자로 조달한 돈을 주로 운영 자금, 채무 상환, 시설 자금 등 회사의 '생존'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바이오 업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쏟아지는 투자금에 돈줄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엔데믹 국면에 본격 진입하면서 바이오 기업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졌고 전 세계 금리 인상 등 여파로 투자가 급감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바이오·의료 분야 벤처투자 금액은 5961억원에 그쳤다. 2021년 상반기에만 1조8101억원이 바이오 업계에 몰리며 정점을 찍은 후 2년 새 투자 규모가 3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다만 업계에 성장이 아닌 생존에 방점이 찍힌 유상증자가 지속되다 보니 원하는 수준의 자금 조달에 실패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셀리드, 메디포스트, 에스씨엠생명과학 등 바이오 회사 다수가 유상증자를 발표한 뒤 주가가 30%가량 급락했다. 셀리드는 당초 유상증자로 조달하고자 한 목표 금액인 40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175억원만 조달하는 데 그쳤다. 최근 유상증자를 추진한 A업체 대표는 "당장 임상 등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매출을 낼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가 유상증자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도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성장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 없이 자금 조달의 한계에 도달한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이뤄지는 유상증자는 기업에 악재로 여겨지며 투자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기 위해 파이프라인까지 정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제한된 자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장성과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신약을 중심으로 투자하겠다는 전략이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지난달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후보물질 BBT-176과 안저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BBT-212 개발을 중단했다. 이들 후보물질에 투입될 예정이던 자금은 시장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BBT-877' 등에 집중 투입한다.
이 밖에도 올해 하반기에만 네오이뮨텍, 퓨쳐메디신 등이 진행 중이던 임상시험 중단을 선언했다. 네오이뮨텍은 위암 치료제 NIT-109 2상과 고위험 피부암 치료제 NIT-106 1b·2a상을, 퓨쳐메디신은 녹내장 치료제 FM101의 임상을 포기했다. 이들 회사는 모두 "파이프라인 선택과 집중을 위한 전략적 판단"을 임상 중단 이유로 들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 성적이 저조한 것은 바이오 업계 자금난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상반기 기술 수출 총액은 2조7947억원에 그쳤다. 2020년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선 제약바이오 기술 수출 규모는 2021년 13조원대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6조3000억원으로 반 토막 난 데 이어 올해는 지난해보다도 성과가 미흡하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 부족으로 주요 파이프라인 임상도 기술 수출 성과를 낼 수준까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바이오 기업의 임상 포기는 곧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만큼 현재 자금난이 회사에 중장기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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